[소설]8월의 저편 171…1929년 11월 24일 (22)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7시 45분


우홍은 달빛 속에서 사고를 한 점에 모으고 있는 듯 했다.

“7시에 희망 탈 거다”

“어디 가는데?”

“상해” 우홍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상해?”

“아마도, 못 돌아올 거다” 우홍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가슴속에 커다란 공기 덩어리가 생겨,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못하고 고여 있다. 우철은 숨을 쉬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의열단이냐…”

그 이름이 정전기처럼 두 사이에 흘렀다. 우철은 난간에 있는 자기 손을 보았다. 손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떨지 않는다. 떨고 있는 것은 내 눈인가?

“짐은 다 꾸렸나?”

“짐이랄 게 뭐 있나. 갖고 갈 수도 없고. 의심받는다 아이가. 고리짝 하나다. 아버지한테 안 들키게 장독대 뒤에서 숨겨 뒀다”

“형님하고는 연락이 닿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홍은 턱이 가슴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가 금방 얼굴을 들고 찌를 듯한 눈빛으로 달을 올려다보았다.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우철은 처음으로 친구를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음이 몹시 슬펐다.

“이제 시간이 없다”

“…역까지 바래다주마”

“됐다. 여기서 헤어지자. 잘 있거라”

“…잘 가라”

우홍의 발소리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보다 더 조용하게 사라졌다. 우철은 신음했다. 그러나 1,2분 동안 자기가 신음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달빛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달빛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허구에 둘러싸여 있는 듯 했다. 우철은 분노와 슬픔이 들끓는 장소보다 훨씬 더 깊이,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장소보다 더 깊이로 침잠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16년을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바람이 다시 불면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강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냥 서 있을 수 없다. 나는 달린다!

이 세상에 십일 문 두 발을 디딜 장소가 없어진다 한들, 앞으로, 앞으로, 발을 내디디고, 달리는 수밖에 없다! 우철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가슴 깊이 빨아들이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달리기 시작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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