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70…1929년 11월 24일 (21)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7시 55분


하나 둘! 하나 둘! 본격적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위로! 앞으로! 하아하아하아하아 토하는 숨이 하얘지고 콧물이 흘러나와 하아하아하아하아 하아하아하아하아 콧물을 누비 저고리 소맷부리에 닦고 이번에는 내려가기.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아하아하아하아 깊은 숨을 들이쉬고, 후우, 토하고, 하아, 들이쉬고, 후우 이번에는 올라가기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다 올라갔다가 그대로 다시 내려오려는데, 돌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이 보였다.

“우철아, 나다”

우홍이였다. 서로 집안 일을 돕느라 보통 학교에 다닐 때처럼 어울려 놀 수는 없었지만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찌된 일이고. 얼굴 꼴이 말이 아니다”

우홍은 계단 가운데쯤까지 올라왔다.

“니는 어떻고”

우홍의 얼굴이 창백한 것은 보름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우철은 친구의 얼굴에서 결연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너 어머니가 우철이 방금 전에 달리기하러 나갔다고 그라길래,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무슨 일 있나?”

“…할 얘기가 좀 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영남루 안으로 들어가자 바람은 숨을 죽였지만 달빛이 마른풀과 삼나무에 소슬거렸다. 맑게 개인 밤하늘이었다. 올려다보니 뒤꿈치가 땅에서 둥실 떠오를 것처럼 커다란 보름달이었다. 너무 커서 누가 그린 그림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대회는 언제고?”

“내일이다”

“준비는 다 됐나?”

“그냥 그렇다”

“우승하면 좋을 건데”

둘은 입을 다물었다. 우철은 우홍에게서 눈을 돌리고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약혼했다는 말은 했는데, 그녀와 잤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있었다. 삼나무집을 찾아가 배다른 여동생의 얼굴을 봤다는 것도 아마 말하지 않으리라. 보통학교를 졸업한 지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할 수 있는 일보다 말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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