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1…1925년 4월 7일(1)

  • 입력 2002년 6월 19일 18시 40분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이제 곧 태어난다 내 형제가 큐큐 파파 엄마는 호랑이한테 물리는 꿈을 꾸었으니 남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고 아버지도 엄마가 비단 치마 저고리를 입는 꿈을 꾸었으니 틀림없이 남자아이일 것이라고 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엄마는 임신을 하고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할매와 동네 아줌마들이 큐큐 파파 불을 건너면 갓 태어난 아기에게 부스럼이 생기고 울타리를 넘으면 도둑놈이 태어나고 아궁이에 발로 장작을 집어넣으면 아기가 밤새 울고 개구리를 먹으면 육손이가 태어난다고 하도 시끄럽게 말들이 많아서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도 남자 동생이었으면 좋겠다 여동생은 싫다 남자 동생이면 같이 달릴 수 있다 큐큐 파파 내가 달리기를 가르쳐줄 거다 아버지는 달리기만 해서 뭐에 써먹느냐고 화를 내지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뿐 태어났을 때 이미 나라가 없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봉쇄되고 큐큐 파파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조선 사람을 게다짝을 신은 강도가 마치 잡초를 짓뭉개듯 짓밟고서 큐큐 파파 대한독립만세만 외쳐도 베고 때리고 지지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왜놈은 조선 사람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공포의 씨앗을 뿌리고 충성스런 신민으로 큐큐 파파 충성스런 신민 따위 어찔 될 수 있으랴! 큐큐 파파 나는 공포의 씨앗에 물을 주지 않는다 한 방울도 큐큐 파파 권총도 폭탄도 갖고 있지 않지만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나는 달린다 아무리 왜놈이라도 달리는 나를 방해할 수는 없다 달릴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온돌방에 뒹굴며 밥을 먹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큐큐 파파 내 눈 내 귀 내 숨 내 심장 내 다리 내 모든 것으로 저항하는 자유를 내 자신을 활처럼 당기고 큐큐 파파 순간적으로 바람과 경주하는 자유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내 남동생에게 가르칠 것이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잠이 온다 몹시 졸립다 지금 몇 시나 됐을까 그림자가 긴 것을 보면 곧 해가 지겠지

큐큐 파파 새벽닭이 채 울기도 전에 엄마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워 큐큐 파파 우철아

네 동생이 태어날 모양이다 어서 가서 할매를 불러와라 나는 달렸다 말보다도 빨리 새벽보다도 빨리 큐큐 파파 동천(東川)을 따라 칠탄산(七灘山)을 단숨에 뛰어올라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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