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사람들③]앙드레 상티니 佛이시레물리노 시장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38분


프랑스 파리의 위성 도시 ‘이시레물리노(Issy-Les-Moulineaux)’의 변모는 프랑스에서도 ‘기적’으로 불린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빈민굴의 대명사였던 이 작은 도시는 20여년 만에 프랑스에서, 아니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도시의 하나가 됐다.

‘주민 5만여명에 일자리가 6만개인 작지만 강한 도시’ ‘기업들이 입주하려면 줄을 서야 하는 도시’ ‘프랑스 정부가 주는 우수 자치단체상을 휩쓴 도시’….

이 소도시를 수식하는 찬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2000년에만 300여개 기업이 이시레물리노에 입주를 신청했다. 이 가운데 129개 기업만 입주 허가를 내주었을 정도로 배짱을 부리는 시가 이시레물리노다. 이런 이시레물리노의 뒤에는 80년부터 22년째 시를 이끌고 있는 앙드레 상티니 시장(62)이 있다.

이 시는 나폴레옹 3세 때인 1865년부터 파리라는 대도시를 움직이는 데 필요하지만 파리에는 둘 수 없는 오염 유해 혐오산업 유치 장소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파리를 오염에서 보호하기 위한 쓰레기 하치장이었던 셈.

염색 잉크 공장 등 각종 유해 화학공장과 총탄 포탄을 비롯한 무기제조 공장 등 각종 혐오 산업이 이곳에 모였다. 실제 이 도시 무기공장에서는 대형 폭발사고도 일어났다. 빈민층이 거주하는 공단지역의 특성상 프랑스 공산당의 거점이어서 시정 또한 불안했다.

결국 1960, 70년대에 들어 거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주민수가 급속히 줄었다. 40만㎡가량의 공장지대가 버려졌다.

상티니 시장이 처음 당선된 1980년은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는 게 상티니 시장의 회고.

그러나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상티니 시장은 이 시가 세계적인 도시 파리에 접해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버려진 공장지대와 유해산업 공장을 기업 사무실로 바꾼다는 시 발전전략을 세운 것.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파리의 사무실 임대료를 걱정하는 기업들에 싼 임대료로 파리에 사무실을 갖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해 나가기로 했다.

그는 시 재정으로 공장 시설을 사무실로 바꾸고 녹지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중소기업은 이주기간중 시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빌려주고 비서까지 제공키로 했다. 창업 기업을 위한 인큐베이팅 시스템까지 갖췄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손님’이 들지 않았다. 워낙 뿌리깊은 빈민굴 이미지 때문에 선뜻 발을 들여놓으려는 기업이 없었던 것.

그러자 상티니 시장이 직접 나섰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찾아다니며 사무실 유치전을 벌였다. 그의 열정은 기업들을 움직였고 코카콜라 존슨앤드존슨 비텔 등 대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기업 CEO 중에는 “당신(시장)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도시로 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상티니 시장은 80, 90년대에 800개의 크고 작은 기업의 사무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기업이나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87∼88년 프랑스 통신부 장관을 지낸 상티니 시장은 정보통신의 미래를 내다봤다. 그는 정보통신 기업의 입주를 중점적으로 유도해 시스코 와나두 휴렛팩커드 등 36개 정보통신 분야 기업을 유치했다.

“정보통신 기업은 고용 및 파급 효과,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상티니 시장의 설명. 그는 시 예산으로 탈도 많았던 무기제조 공장을 사들여 디지털 단지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경제에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상티니 시장은 시의 외관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 5개의 대형 공원과 4만5000㎡의 녹지를 조성했다.

최고 수준의 건축가들을 동원해 시의 주거 건물을 리노베이션했으며 모든 다리의 개보수 공사를 했다. 95년 건립한 시청은 건축 전문지 표지에 나올 정도의 ‘작품’. 이시레물리노는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상티니 시장은 “나 혼자 뛰었다면 이만한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민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했다.

시 의회 및 19개의 지역위원회 등을 통한 주민 자치를 강화하는 한편 시 의회 상시 중계와 수신자 부담 전화 미니텔 인터넷 등을 통한 시장과 주민의 1 대 1 대화 등을 통해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했다. 시장과 주민이 직접 통할 수 있는 소도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

이 같은 시정 운영 시스템으로 이시레물리노는 유럽연합(EU)이 선정한 ‘지방정부와 시민 네트워크 강화 모범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상티니 시장과 이시레물리노 주민의 ‘윈윈 게임’이었다.

상티니 시장은 지난해 시장 선거 때 너무 오래 시장을 했다는 점과 건강 등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퇴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여전히 ‘장기집권’ 중이다.

이시레물리노〓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상티니 시장 인터뷰▼

이시레물리노시의 앙드레 상티니 시장은 22년간의 ‘장기집권’을 통해 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를 연상케 했다. 파리시 경계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이시레물리노시청 시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상티니 시장에게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처음 시정을 맡은 80년과 지금의 이시레물리노를 구체적인 수치로 비교해달라’는 기자의 첫 질문에 그는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22년 동안이나 시장을 지냈다는 게 상상이 안 간다. 비결이 뭔가.

“나처럼 오래 시장을 한 사람은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을 통틀어도 없다. 이시레물리노는 과거 빈민 거주 공단지역으로 프랑스 공산당의 표밭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금 내게 투표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재임기간처럼 돈을 많이 번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장 선거 때 득표율은….

“1차투표(프랑스는 1차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에서 7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빈민굴이었던 공단지역을 오피스타운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어려웠을 것 같은데….

“열악한 공단지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이곳에 들어오려는 기업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장들을 찾아다녔다. 비결이 있다면 먼저 파급력이 강한 언론을 움직였다고나 할까. ‘레큅’이나 ‘마리클레르’같은 잡지사 사무실을 시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여성지 마리클레르를 유치한 것은 무척 효과가 컸다. 마리클레르에 근무하거나 마리클레르사를 찾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시를 활보하자 시에서 불평하는 사람이 없어졌다.”(웃음)

-유럽연합으로부터 시민 네트워크 강화 모범도시로 선정됐는데 주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방법은….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인터넷 보급률이 떨어지지만 우리 시는 인터넷을 시정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광우병 때문에 학생들 급식에서 쇠고기를 뺐다가 다시 공급하려 했을 때 인터넷을 통해 주민들의 의향을 물었다. 광우병 위험이 거의 없는 상등품 쇠고기를 학생들에게 급식하려는데 당신은 얼마를 추가 부담할 수 있겠는가. 주민 대부분은 추가 부담 용의를 밝혔고 주민 30%는 기존 급식비의 20% 이상을 부담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같은 답변이 즉각 시정에 반영됐다.”

-중앙정부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아는데….

“우수 자치단체에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아 다른 시장들의 질투를 사고 있다. (웃으며) 아시다시피 프랑스인들은 남보다 한발 앞서 성공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권순철 전 소나무회 회장▼

앙드레 상티니 이시레물리노시 시장과 인터뷰를 끝내고 시장실을 나서려는데 낯익은 한국 민예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상티니 시장은 “한국 화가들의 선물”이라며 웃었다.

90년대 초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일부 한국 화가들이 만든 창작그룹 ‘소나무회(Association Sonamu)’는 이 도시의 버려진 병기창을 개조, 공동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회원 40여명 가운데 한국 화가만 20여명인 ‘소나무회’는 이 공동 아틀리에의 이름을 예술(Art)과 병기창(Arsenal)을 섞어 ‘아르스날(Artsenal)’이라고 불렀다. 상티니 시장이 ‘아르스날’에서 작업 중이던 한국 화가들과 가깝게 된 것은 예술가를 우대하는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러운 일. “한국 화가들은 실력이 뛰어나다”는 게 상티니 시장의 평가.그러나 상티니 시장의 시 개조작업의 일환으로 이 병기창이 철거되게 되자 시는 철도가 지나는 다리 밑을 개조, 아틀리에를 만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고 건축 공모를 거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 밑 아틀리에’가 탄생했다. 2월 입주가 시작된 새 아틀리에에는 한국 화가 9명이 입주해 있다.

권순철(權純哲·58) 전 소나무회 회장은 “상티니 시장은 소나무회나 한국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한다”며 “예술은 물론 한국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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