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 Books]에번 슈워츠 著 '웹경제학'

  • 입력 2000년 1월 28일 1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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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기업 가운데 골드뱅크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도 드문 듯하다. 인터넷 경제의 가능성과 폭발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는 찬사로부터, 기술력도 벤처정신도 없는 엉터리 기업이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엇갈린다. 얼마 전에는 프로농구단까지 인수, 논란의 수위를 한층 높여 놓기까지 했다. 코스닥 상장 초기의 기세와 달리 최근에는 주당 1만원 미만의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골드뱅크에 대한 논란의 수위만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진호 골드뱅크사장의 아이디어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상당 부분 인터넷 경제의 미래를 앞서 예견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취한 사업 방식은 가입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활동의 적극성에 상응하는 상금을 추가 적립해주는 것이었다.

필자는 에번 I. 슈워츠의 책 '웹경제학: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는 9가지 법칙'(고주미·강병태 옮김 / 세종서적 펴냄)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1997년에 나온 그 책에, 골드뱅크의 성공사례와 같은 신종 인터넷 화폐의 개념이 이미 정확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업종을 막론하고 모든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화폐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향후 상품이나 서비스로 맞바꿀 수 있는 점수를 단골 고객들에게 제공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웹은 그런 점수들을 벌거나, 사고, 팔고, 교환하고, 상품과 맞바꾸는 장소가 될 것이다."

골드뱅크는 이를테면 다른 기업들보다 앞서 사이버 화폐 개념을 사업 재료로 삼았던 셈. 김진호사장의 다음 계획도 슈워츠의 예견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제공·운영하는 마일리지 제도나 점수를 서로 호환되거나 맞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때로는 나온 지 몇 년 된 책을 다시 한 번 집어드는 것도 유익하다. 요즘처럼 기술의 변화, 아이디어의 폭발이 잦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1년 혹은 2년 전의 예견이 지금에 와서 얼마나 들어맞았는지, 또는 틀렸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미처 조사하거나 분석할 여유조차 없이 다만 앞으로 내달아야만 경쟁에서 지지 않을 수 있는 요즘의 인터넷 시장 환경에서 더없이 요긴한 일이다.

에번 슈워츠의 '웹경제학'은 1997년 출간됐을 당시 인터넷 (예비) 기업가들 사이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가 작명한 '웨보노믹스'(Webonomics·'웹경제학'이라는 평범한 번역보다 훨씬 더 특별해 보인다)라는 단어도 더없이 독특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아홉 가지로 정리된 웹경제의 문법이 놀라울 만큼 명쾌하고 기지에 찬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컴 회장이 "독자들은 자신의 경쟁자가 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더욱 주목할 것은 3년 전의 정리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타임'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만큼, 인터넷 시장에서의 빠른 변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의 3년이란 현실에서의 7년, 혹은 10년에 상응하는 것. 그러나 슈워츠가 3년 전에 읽은 인터넷 시장의 문법은 여전히 그 적실성을 유지하고 있다.

①양질의 서비스로 웹 방문자들의 관심을 지속시켜라

인터넷에서 '부가가치'라는 용어는 뉴스와 정보 비즈니스의 새로운 화두다. <뉴욕타임스>의 편집 담당 이사를 지낸 적이 있는 맥스 프랜켈은 "뉴스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갖고 무엇을 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 <산 호세 머큐리 뉴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현실의 시장 논리와는 다른 웹에서 어떤 실험을 했고, 어떻게 성공/실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는 유료화에 매달려 전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배포하는 '무리수'를 뒀으나 실패했다. <산 호세 머큐리 뉴스>는, 처음에는 성공한 듯했지만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뉴스 사이트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 결국 처음 고집을 꺾고 완전한 무료 서비스로 정책을 바꿨다(이 책은 무료로 전환하기 전까지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슈워츠는 '성공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것은 틀린 판단이었다). 여전히 유료화를 고집하면서도 성공한 사례로는 <월 스트리트 저널>이 거의 유일하다. 요컨대, 부가가치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②구매 가능성이 높은 고객에게 집중하라

인터넷의 모든 네티즌들을 유혹하겠다고? 아서라. 웹에서 매스 마케팅은 돈 낭비, 시간 낭비일 뿐이다. 특정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생각도 별로 현명하지 않다. 스웨덴의 볼보 자동차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였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품을 누구에게 팔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목표 구매층이 어떤 사이트들을 주로 찾는지 파악한 뒤에, 그 사이트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이다. 정보의 내용도, 개별 이용자들에 고유한 취향과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컨대, 소비자들과 가장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③신상정보를 제공하는 소비자에게 보상하라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인 리치 에버렛은 "만약 소비자가 5년째 미니밴을 타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즉시로 구미가 당길 만한 리스 가격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개별 소비자들의 취향, 관심, 요구 등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가장 민감한 논쟁거리가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라는 점도 그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에번 슈워츠의 판단은 다소 독특하다. "소비자들은 정보 프라이버시에 대해 걱정하지만,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거래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소비자들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기꺼이 내줄 수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다만 명심할 것 한 가지.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는 목적에만 연연하지 말자.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정보를 활용하라."

④값진 정보가 있어야 소비자를 끌 수 있다

"웹 상의 소매업자들은 더 넓은 선택의 폭이나 상품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전문성' 또는 소매가보다 낮은 '가격'을 제공해야 한다"고 슈워츠는 강조한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를 아마존컴에서 발견할 수 있다.

⑤웹은 여러 분야에 걸쳐 셀프 서비스를 확산시킨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소비자들의 요구를 적절히 채워줄 수 있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는 페더럴익스프레스(FedEx)나 UPS처럼 운송물 배달 과정을 소비자가 직접 추적할 수 있게 한 서비스, 델컴퓨터 같은 회사들의 기술 문제에 대한 응대, 여행 관련 예약, 홈뱅킹 및 사이버트레이딩 같은 것들이 있다. 여기에서 승패의 열쇠는, 이러한 셀프 서비스가 얼마나 편리하고 알기 쉽게 제공되는가 하는 것이다.

⑥가치 기반 통화를 이용하는 독자적인 화폐 시스템

'가치 기반 통화'는, 쉽게 표현하면 항공사나 카드회사의 '마일리지' 서비스 같은 것이다. 요즘 웬만한 인터넷 서비스치고 이같은 마일리지 점수 제도를 갖지 않은 곳은 드물다.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수조(兆)원어치의 점수를 안겨주면서, <월 스트리트 저널>의 표현에 따르면 '제2의 통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편 디지털캐시, 마이크로페이먼트 같은 형태의 온라인 화폐/지불 방식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의 안전성과 융통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⑦신뢰도 높은 브랜드는 웹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종래의 일류 브랜드들은 웹 경제에서 새롭게 재평가될 것"이라고 슈워츠는 말한다. 웹에 진출해서 그 명성에 부합하거나 오히려 능가할 만한 결과를 거둔 브랜드들은 더 큰 가치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브랜드들은 이미 가졌던 권위마저 잃을 수 있다.

웹에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힘들다. 하지만 '선점'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이밖에도 슈워츠는 ⑧웹 경제에서는 소규모 기업도 쉽게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 ⑨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라는 등의 주문을 하고 있다. 두 항목은 그 제목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금과옥조'(金科玉條)들이다. 한편 슈워츠는 최근 웹경제학의 후속편이라 할 '디지털 다위니즘'을 펴냈다.

김상현<동아닷컴 기자>dot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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