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금강전]작자미상 「청록산수 10폭 병풍」

입력 1999-07-14 18:36수정 2009-09-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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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도'
19세기에는 선비문인들 사이에 금강산을 유람한 뒤 서화첩을 제작하는 일이 잦아진 한편, 민간에서는 장식용 병풍 그림들이 크게 유행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임전 조정규(琳田 趙廷奎·1791∼?)와 석당 이유신(石塘 李維新·19세기) 등 화원들의 병풍그림과 금강산을 그린 민화 병풍들이 그 좋은 예이다. 민간에까지 금강산은 한번 가보고 싶은 꿈의 일만이천봉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병풍의 민화 금강산도 가운데는 기암 계곡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재구성해 해학미를 듬뿍 담아낸 그림들이 많다. 대체로 단발령에서 내외금강과 해금강, 혹은 관동팔경까지 8폭 내지 10폭으로 구성했다. 민화병풍들은 각 폭별로 별도의 명소들을 담거나 금강산 전체를 한 화폭으로 아우른 대병풍으로 꾸미기도 했다. 금강산이 민간신앙의 대상이 된 점과 관련, 남녀 성기를 빗대 형상화하거나 불보살이나 승려모양의 바위들을 열거해 무속적인 요소와 신령스러움을 강조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금강산을 순례해야 금강부처의 은덕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대중에 회자되어 왔는데, 금강산 유람을 엄두도 못 내던 민간에서는 금강산 병풍으로 여행을 대신했던 셈이다.

이러한 19세기 민화 금강산 병풍형식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근대적 방식으로 변환시켜보려 한 작품이 비단에 세필로 그린 작자미상의 ‘청록산수 10폭병풍’이다.

‘단발령망금강전도(斷髮嶺望金剛全圖)’ ‘장안사도(長安寺圖)’ ‘표훈사도(表訓寺圖)’ ‘만폭동도(萬瀑洞圖)’ ‘유점사도(楡岾寺圖)’ ‘만물상도(萬物相圖)’ ‘비봉폭도(飛鳳瀑圖)’ ‘구룡폭도(九龍瀑圖)’ ‘총석정도(叢石亭圖)’ ‘해금강도(海金剛圖)’로 내외금강과 해금강의 절경을 뽑은 것이다.

그림의 형식은 근대 사생화보다는 전통성이 강한 편이다. 구성방식이 민화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경 토산의 송림과 전나무 숲의 섬세한 묘사, 계곡의 각진 바위와 물결표현에서 김홍도 화법의 잔영이 보인다. 이처럼 정밀한 세부묘사는 민화풍과 구별되는 정식 회화수업을 받은 화가의 솜씨이다. 특히 담록색 바탕 위에 수묵 미점(米點)을 반복해 부피감을 낸 토산과 근대식 입체화법을 가미한 듯한 흰색의 바위표현은 상당한 기량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마치 산을 직접 보지않고 상상한 듯한 ‘가상진(假想眞)’의 느낌이 짙다.폭마다 근경은 실경답게 하고, 원경은 민화풍으로 조합한 듯해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 병풍그림 10폭 가운데 19세기 민화풍을 선명히 보여주는 경우는 ‘만물상도’이다. 마치 레고를 층층이 쌓은 듯한 만물상의 여러 봉우리의 각진 묘사가 인상적이다. 자세히 보면 만물상 바위들을 의도적으로 불보살과 승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묘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화면 전체를 한 눈에 감상하기보다 하나 하나 읽어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그림이다.

‘해금강도’나 ‘총석정도’에서는 전통적인 그림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개 해변가 육모형 총석(叢石)과 해금강의 바위를 근접해서 포착한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이 경우 동해바다 멀리에서 해금강과 총석정 위로 솟은 외금강의 장관을 함께 포착해 큰 감명으로 다가온다. ‘솔개화법’에서 한 단계 나아가 새시대의 화법으로 그렸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전망한 듯한 스케일이다. 첩첩이 선 총석의 도식화된 배열이나 해금강 바위의 형태묘사에 민화풍의 잔영이 남아있지만, 전통형식이 근대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화되는 과정을 따져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병풍 각 폭의 화면 윗 부분에 ‘청재(淸齋)’거사가 감상문을 썼다. 연도는 1929년으로 적혀 있다. 마지막 폭 ‘해금강도’에 ‘소은(小隱)’이 예서체로 제발(題跋)을 썼다. 그리고 이 병풍의 주인은 ‘석동노인(石東老人)’이었다. 석동의 집에 소장해온 금강산 그림을 병풍으로 꾸미면서 세 사람이 모여 감상했다고 적혀 있다. 이들 세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서 청재는 혹시 청허재(淸虛齋)라는 당호를 쓴 해강 김규진(海崗 金圭鎭·1868∼1933)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규진은 대나무그림으로 유명했던 서화가로 1920년대 채색화풍의 금강산도를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저간의 사정으로 미루어, 이 그림의 제작시기는 19세기말 혹은 20세기초쯤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병풍은 몇 년전 광주의 한 고미술품 가게에서 처음 보았다. 병풍에서 뜯겨진 채 둘둘 말려 있어,그저 허름한 민화로 여겼다. 전시준비 중 그 때 본 기억이 떠올라 찾아보았더니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표구를 다시 하고 나니 명작 금강산도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야말로 흙먼지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미술사에서 영영 사장될 뻔한 한 시기의 독특한 양식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이태호<전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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