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키드]서울 중랑구 정성원씨댁

  • 입력 1999년 5월 24일 18시 51분


5월5일(수) 날씨 맑음.

“엄마 나 저거 사줘.” 내가 어린이대공원에서 나비가 달려 있고 바닥에 끌면 날개가 퍼덕거리는 막대기를 사달라고 엄마한테졸랐다. “저건 5세짜리 어린애나 갖고 노는 거야.” 엄마가 안사준다고 했는데 나는 또 졸랐다….

서울 신현초등학교 2학년3반 정윤선양(8)은 따옴표가 있는 ‘대화식 일기’를 쓴다. 구체적 장면을 떠올리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이미지 재생능력이 길러진다는 것이 부모 정성원(33·자동차용품 판매업) 이수경씨(31·주부)의 믿음.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정씨부부의 밀레니엄 키드는 윤선양과 아들 한준군(5).

▽‘1인분’의 미학〓어린 한준이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 그러나 어머니 이씨는 ‘1인분’의 요금을 제 손으로 지불하게 한다. 지하철표를 직접 개찰구에 넣고 빼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어린애’가 아닌 ‘한사람’이란 인격개념을 갖게 된다고 생각. 자장면을 시킬 때도 남길 망정 한준이가 스스로의 몫을 주문. 대신 맛이 없어도 부모와 바꿔 먹을 수는 없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총량개념’의 간식〓간식은 자유로이. 대신 2,3일치를 한꺼번에 준다. 첫날 다 먹어버리거나 아껴뒀다 마지막 날 상한 것을 먹는 등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적정량을 배분해 먹는 ‘계획적 사고’가 정착한다고 믿기 때문. 사흘치 간식으로는 보통 크기의 4배인 대용량 새우깡(1봉지 1천6백원)을 주로 사준다.

칭찬은 ‘점수’를 구체적으로 곁들이는 방식. “방을 깨끗이 치웠네. 98점이야.” “와,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네. 밥 알갱이를 많이 남겨서 85점.”

▽남과 여〓방이 2개뿐이다 보니 오누이는 어려서부터 한 방 생활에 익숙. 부모는 지금도 샤워를 함께 하며 노는 것을 장려한다. “남녀의 신체구조 차이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습니다.”(아버지 정씨) 대신 목욕탕 문은 10㎝ 열어 놓는다.

▽침대의 대가〓아이들 방엔 침대가 1개뿐. 한준이가 크면서 누나가 자던 침대를 차지하겠다고 나섰다. 부모는 ‘자기 전 옛날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침대에서 잔다’는 원칙을 천명. 침대를 차지한 누나는 동생이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는 날이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동생의 미술학원숙제도 챙겨주고 얼굴을 씻기는 등 ‘준(準)엄마’가 됐다.

▽훌라후프와 부작용〓어머니 이씨는 매일 오후5시 아이들을 데리고 공터로 간다. “이러면 허리살이 빠져.”훌라우프를 함께 하고 귀가하면 오후6시. 아이들의 TV만화 시청시간을 1시간 가량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윤선이 다이어트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작용이 발생. 뚱뚱한 아이는 상대하지 않거나 오후8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 해 걱정.

▼서울 중랑구 학부모의 경우▼

서울 중랑구 일대는 교육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높다. 많은 학원에 다니거나 학습지를 여러개 하지 않으면서 투자에 대한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것. 동물그림이나 숫자를 학습지에서 오려내 교보재로 활용하는 등 ‘재활용’도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예능학원 하나에 학습지 1,2개가 ‘평균’. 학원에 안보낼 경우 학교방과후교실을 통해 미술 글짓기 음악 등을 배운다. 그룹지도는 예체능보다 글짓기가 많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담임교사를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 편. 대신 학교 급식배급이나 방과후 청소(저학년은 부모가 맡아 함) 등 ‘노력봉사’에 적극 참여해 교사와 자연스럽게 만나 성적이나 태도변화 등 아이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다.

이웃끼리 ‘단체행동’ 성향이 강해 소문에 따라 동일한 학원이나 학습지를 한꺼번에 수강 또는 구독 신청하거나 끊는 현상도 발생.

〈이승재기자〉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