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김갑식/스크린쿼터 그물에 풀죽은 「쉬리」

  • 입력 1999년 3월 28일 19시 24분


“분명 오늘은 잔칫날이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심정은 아닙니다. 오전 정지영감독으로부터 한장의 팩스를 받고 나니까 더 그렇습니다. 내가 과연 몇년 뒤에도 한국영화 감독으로 한국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을지….”

영화 ‘쉬리’의 강제규감독이 잔칫상 앞에서 밝힌 감회다.

잔치는 ‘쉬리’가 한국영화 흥행 최고기록(‘서편제’1백3만명)을 깬 기념으로 2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자축연.

‘쉬리’는 이날 또 다른 기록도 세웠다. 행사를 하는 도중 서울관객 기준으로 1백69만여명의 관람객을 넘겨 국내외 영화 통상 2위기록(91년 ‘사랑과 영혼’)을 앞질렀다.

이제 ‘타이타닉’(2백26만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잔칫상’을 받은 강제규감독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을 알리면서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그가 받은 팩스는 잭 발랜틴 미국영화협회장 일행이 스크린쿼터 폐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방한했다는 내용.

신낙균문화관광부장관이 영화진흥기금 1천억원 확보와 통합전산망의 실시 등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밝혔지만 한번 식은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한 영화인은 “‘쉬리’같은 흥행작을 여러 편 만들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스크린쿼터가 무너지면 존립마저 어려워진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잔칫날인 데도 하루쯤 마음껏 웃으면서 즐길 수 없는 게 우리 영화계의 속사정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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