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설계를 할 때마다 나는 늘 흥분한다. 그것은 새로운 가정, 새로운 장소를 만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모든 건축주의 요구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다른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서로의 차이점에서 오는 신선함은 일반건축물 설계 때와는 사뭇 다른 차별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차이점과 주거에서의 보편적 속성을 결합시키는 작업은 늘 고민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자체는 나에게 즐거움이다. 더군다나 현대 주거에서 잃어버린 남성의 공간을 회복시키는 일 또한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집은 의사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노부모가 함께 거주하는 3대를 위한 집이다. 이러한 가정의 경우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가 심하고 세대간 기호와 관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더욱이 이 집은 대지가 도로보다 낮고 굴곡진 도로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뒷산의 흐름이 이곳을 관류하고 있어 이를 잘 풀어가는 것이 이 주택 설계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따라서 도로와의 관계설정, 자연의 관류, 공간의 유용성과 가변성, 남성의 공간 설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정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시를 구성하는 도로체계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것이고 집은 혈관의 마지막 조직체로 볼 수 있다. 도로에서 집을 거쳐 정원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도로화된 내부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 공간을 과정적 공간 또는 비일상적 여백의 공간으로 처리, 그것이 이 집의 중심이 되게 했다.
또한 거실과 식당 사이 움직이는 벽과 옥외 마루식당의 가변적 창을 실내공간과 실외공간의 상호침투를 통한 공간 변화의 핵심적인 장치로 도입했다. 그리고 가족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1,2층을 열리게 해 2층에서의 행위를 거실이나 식당에서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정원에 정자형 사랑채를 만들어 남성의 공간을 제공한 것이나 세월의 흐름에 따른 가족수 변화에 대비, 지하1층을 임대가능한 독립세대로 처리하면서 도로에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동선체계를 확보한 것도 이 집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이같이 집이란 물리적 기능만을 해결해 주는 장소가 아니다. 꿈을 실현하고 정신이 살아 숨쉬는 그러한 장소를 집은 제공해 주어야 한다.
우경국(예공건축 우경국스튜디오소장)
▼약력 △한양대 건축과졸 △경기대 대우교수 겸 디자인디렉터 △서울대공원 마스터 플랜 △95강구조 작품상 우수상. 02―730―88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