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골목마다 정 넘쳐』

  • 입력 1997년 1월 17일 20시 19분


아시아의 대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서울 역시 혼잡한 도시다. 대기오염 무질서 교통난 등으로 서울의 첫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도 오래 살다보면 모르는 사이에 변해간다. 이방인의 시각은 서서히 바뀌어 환경에 익숙해지고 장소와 때 그리고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방법도 배우게 마련이다. 큰길에 가려져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이 있다. 큰길이 인정없는 곳이라고 한다면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다. 곳곳에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고 사람과 차로 붐비는 골목길에는 삶의 활기가 넘친다. 서양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자세로 길바닥에 웅크린 채 김치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 어깨가 짓눌릴 듯 큰 가방에다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바삐 걸어가는 학생들. 그리고 말끔한 양복차림의 비즈니스맨과 직장인들…. 서울의 하늘을 무질서하게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콘크리트 투성이인 빌딩 사이를 지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도시가 비인간적으로 비춰지는 까닭은 다름아닌 사람들 내면에 존재하는 비인간성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포장에 있어서도 뛰어난 솜씨와 기술을 발휘한다. 선물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상자며 다양한 종이만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밑동을 볏짚으로 보호해 놓은 모습들. 공사가 진행중일 때면 가림막으로 둘러쳐진 다리의 교각들.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배어있는 이런 모습들은 마치 크리스토퍼가 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포장했던 것이나 진배없이 아름답다. 또한 한국인에게는 남다른 단호함이 있다. 한때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마치 서울의 심장에 박혀 있는 화살처럼 보였던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난 가을 완전히 철거됐다. 이런 단호함에서 해방을 맞은 지 50년이 넘도록 한이 맺혔던 민족의 기상과 역사 바로세우기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사간동에 자리잡은 프랑스문화원의 내 사무실 유리창 밖의 시야는 거칠 것 없이 탁 트여 경복궁을 지나 주변의 산에 이르는 길까지 훤하게 보인다. 클레르 베르제바숑<프랑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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