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씨 자작극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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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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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과 친해” 망상장애의 일종

일명 ‘장자연 편지’는 결국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최근 주요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것을 감안하면 황당한 결과다.

○ 모양이나 필순이 장 씨 친필과 달라

양후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영상과장이 16일 일명 ‘장자연 편지’에 대한 필적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양후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영상과장이 16일 일명 ‘장자연 편지’에 대한 필적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장자연 씨 친필 △전모 씨 친필 △장 씨 편지 원본 24장 △적색편지(전 씨의 아내와 아내 친구 명의로 작성된 것) 등 4가지를 비교 분석했다. 원본과 적색편지는 경찰이 전 씨가 수감된 광주교도소에서 압수한 것이다.

국과수는 원본은 장 씨의 친필과 비교했을 때 글자 모양과 필순, 맞춤법 등에 있어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야’자(字)를 쓸 때 원본에서는 ‘ㅏ’를 한 번에 이어 쓴 후에 위에 한 획을 추가하는 방식인 반면 친필은 아래에 한 획을 추가해 썼다. 두 필적이 모양은 비슷하지만 쓰는 방식은 달랐다는 것이다. 또 ‘ㅃ’도 ‘U’자 모양으로 쓴 후에 안에 ‘十’자를 써넣는 형태가 원본과 친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됐으나 十자를 쓰는 필순은 달랐다.

국과수는 전 씨의 친필은 원본(정자체)과 전혀 다른 흘림체로 쓰여 있어 같은 사람의 글씨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원본과 전 씨 친필이 ‘거짓말’을 ‘거짖말’로, ‘하듯’ ‘버리듯’을 ‘하듣’ ‘버리듣’으로 쓰는 습성이 같았다고 설명했다.

○ 내용 인물도 ‘거짓’

조작으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는 증거는 곳곳에서 확인됐다. 우선 편지 원본에서 확보한 유전자(DNA) 및 지문은 감식 결과 모두 전 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장 씨와 관련된 것은 없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도 눈에 띈다. 편지 중에는 장 씨가 출연한 ‘정승필 실종사건’이라는 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그들이 온다’였다. 제목이 바뀐 것은 장 씨가 숨진 이후인 2009년 6월이다.

‘조작’을 뒷받침하는 주변 정황도 드러났다. 2009년 6월 부산구치소 교도관이 작성한 접견내용 기록에는 전 씨가 면회객에게 “자연이 편지 온 거 사실 퍼온 건데…”라고 얘기한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전 씨의 교도소 내 복사기 사용 기록은 장 씨가 숨진 이후인 2009년 6월부터 급증했다.

○ 도대체 왜?

전과가 있는 전 씨는 19세이던 1999년 2월 강도강간 혐의로 구속된 뒤 2003년 2월 출소했다가 3개월 만인 2003년 5월 다시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됐다. 장 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50통 231장에 이르는 편지를 위조할 수 있었을까.

정신과 전문의와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은 바로 전 씨의 정신병력에 해답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 씨는 수감 중이던 2006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관계망상 의증 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관계망상은 주위 모든 것이 자기와 관계가 있으며 자기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장애의 한 종류다. 권일룡 경찰청 프로파일러는 “유명 연예인과 개인적으로 친하고 자신을 대단한 능력자로 믿는 과대망상 증상과 사고 과정에 장애를 보이는 등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아주대 의대 노재성 교수(정신과)는 “망상증이 심하면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며 “일종의 스토킹으로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전 씨는 장 씨가 죽고 난 2009년 3월 이후 대부분인 17개월을 독방 생활을 했다. 전 씨의 감방 동료들은 “시나리오를 쓸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났다. 여러 글씨체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5, 6통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갑식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전 씨가 장 씨 사망 이후 관심을 갖고 언론에 공개된 장 씨의 친필 문건을 보고 글씨체를 연습해 고인에게 받은 편지로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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