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임효준 男쇼트트랙서 한국 첫 金
정강이뼈-발목-허리 부상 극복… 올림픽 첫 태극마크 평창서 우뚝
“경기 남아… 계주는 죽기살기로”
金 이맛이지 임효준이 11일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목에 건 금메달을 깨무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강릉=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 후배는 그에게 “형, 이렇게 쇼트트랙 하다가 정말 죽겠어”라고 했다. 7번의 수술, 그리고 재활. 빛을 본다 싶을 때마다 여지없이 들이닥치는 부상의 그림자는 때론 모든 걸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매번 다시 스케이트 끈을 조여 맨 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때문이었다.
임효준(22·한국체대)이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한국 선수단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처음 출전한 올림픽 첫 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2분10초485)을 세웠다.
어려서 또래보다 작고 약했던 임효준은 스케이트에서만큼은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쇼트트랙을 시작한 임효준은 4학년 때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종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임효준의 재능을 발견한 코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시키려던 그의 어머니 곽다연 씨(48)에게 ‘매일 훈련하지 않으면 효준이를 안 맡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본격 선수의 길을 걷게 했다.
그러나 그의 쇼트트랙 인생은 늘 빛보다 그림자가 길었다. 중학교 때 오른쪽 정강이뼈 골절을 시작으로 발목 인대 손상, 손목, 허리 골절 등 수술대에만 7차례 올랐다. 곽 씨는 주위로부터 “왜 그렇게까지 해서 운동을 시키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력만큼은 확실한 선수였기에 상처는 더욱 깊었다. 16세이던 2012년 겨울유스올림픽에서 남자 1000m 금메달을 따며 ‘전성기 시절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았지만 부상에 다시 쓰러졌다. 임효준은 “2년 전 허리가 부러졌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대학 후배들이 ‘정말 쇼트트랙 하다가 죽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태어나기 전부터 시련이 있었다. 첫아이 임효준을 임신한 뒤 곽 씨는 정기 검진차 대구의 한 산부인과에 갔다. 태아의 심장 박동이 잘되지 않아 거의 죽기 직전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병원을 찾은 곽 씨는 태아가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선 병원의 오진이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2kg대로 태어난 임효준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 악바리 22세 “이젠 햄버거 먹어도 되겠죠” ▼
“한방 보여줄 거지” 농담했던 엄마… “준이는 승부라면 눈에 불 켜는 아이”
한국에 평창 겨울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준 임효준(왼쪽)이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4차 월드컵이 끝난 뒤 어머니 곽다연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다연 씨 제공 숱한 역경 속에서도 그가 질주를 멈추지 않은 건 순전히 평창 올림픽 때문이다. 임효준은 “평창 하나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 씨는 “하도 수술을 많이 해서 병문안 온 사람들이 초상집 분위기를 예상하는데 담담해서 오히려 놀라더라. 준이가 다쳤을 때는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준이는 의연했다”고 전했다.
곽 씨는 “어릴 적 컴퓨터를 우승 선물로 약속했는데 금메달을 따자마자 스케이트를 벗고 관중석까지 올라오더라. 승부라면 그렇게 눈에 불을 켰다”며 남달랐던 승부욕을 전했다. 대구 계성초 4학년 재학 시절 담임 노찬석 씨는 그를 ‘악바리’라고 말했다.
우상 ‘국민타자’ 이승엽도 정신적 의지가 됐다. 임효준은 대구 연고의 프로야구 삼성 스타 이승엽이 자신을 응원한 기사(본보 2017년 12월 25일자 A1면 참조)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승엽의 말을 인용해 “외로워지는 순간이 있으면 그때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코치, 동료, 국민들을 생각해라”라고 적었다.
이승엽은 “큰 부담을 떨쳐 내고 따낸 금메달이라 더 축하해 주고 싶다. 남은 경기에서도 다치지 않고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9일 개회식 때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며 평창 올림픽에 힘을 보탰던 그는 “올림픽을 마치고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고향 후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해 대표 선발전에서 깜짝 1위를 하며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임효준은 첫 올림픽 출전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친구, 재활코치 등에게 자비로 올림픽 경기 티켓을 사서 보내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임효준은 예선, 준결선을 모두 1위로 통과했다. 3번 레인에서 출발한 임효준은 6바퀴를 남기고 다른 선수에게 밀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양손으로 빙판을 짚고 버티며 레이스를 이어갔다. 3바퀴를 남겨놓고 선두로 나선 임효준은 그대로 선두를 빼앗기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양손을 앞으로 쫙 뻗으며 포효하는 임효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듯 2위 싱키 크네흐트(네덜란드)는 그의 헬멧을 두드리며 축하를 건넸다. 임효준은 2014년 소치 올림픽 남자 대표팀의 노메달 한을 푸는 동시에 이번 대회 금빛 사냥의 서막을 알렸다. 임효준은 “아직 500m, 1000m 경기가 남아 있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남자 5000m 계주는 죽기 살기로 해서 꼭 금메달을 가져오겠다”며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경기장에서 아들을 응원하던 곽 씨는 “부상에 시달리던 효준이에게 ‘이러다 한 방으로 보여주려고 그러지?’라고 농담을 했었는데 정말 한 방에 보여준 것 같아 대견하다”고 했다. 임효준은 “금메달을 땄으니 그동안 못 먹었던 햄버거를 하나쯤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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