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未完의 ‘촛불’, 그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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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년 뭐가 달라졌나… 권력 눈치보기 사라지지 않고 진영논리-패권주의도 여전해
얼굴 바뀌었지만 정치는 그대로… 좌우-선악 나뉜 삿대질 더 기승, 구조·환경 개선할 처방전은 없어
촛불 참여 국민 마음속 있던 새로운 정치 향한 갈망과 염원, 실현하기 전 승리 말하지 말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촛불 1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대통령이 들어섰다. 지지 기반이 다른 세력이 집권한 만큼 정부의 정책방향과 국정 운영 스타일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촛불에 상응할 만한 변화가 있었는가? 아래의 대담과 인터뷰를 보자.

어느 대담에서 교수 한 사람이 말했다. “촛불혁명은 참여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명예혁명이다.” 세계적 석학인 필립 슈미터 시카고대 교수가 이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군중이 많이 참여했다고 해서 참여민주주의는 아니다.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는 들어서지 않았다.”

그 교수가 반문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 않은가?” 슈미터 교수가 다시 받았다. “새 정부라 하지만 결국 같은 유형의 정치세력이다. 기존 세력 중 다른 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뿐이다. 한국은 이전과 같은 유형의 정치세력이 통치하고 있다.”

또 하나 소개하자. 어느 기자가 민중의 삶을 소설로 써 온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에게 물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는 거냐?” 선생이 답했다. “박 정부는 편 가르기가 심했고 권한을 남용했다. 문 정부는 색깔과 논리는 다르지만 똑같이 편중돼 있다. 결국은 비슷한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야박한 평가들인가? 하지만 한번 따져보라. 너나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그 앞에 줄을 서게 만드는 국가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있나? 우리 사회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고 가는 진영논리와 패권주의 문화는? 또 국가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대중영합주의는?

권력의 얼굴은 바뀌었지만 정치는 그게 그거다. 세상을 ‘좌’와 ‘우’, ‘선’과 ‘악’으로 쪼개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행태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에 대한 분석과 처방은 없고, 오로지 ‘네가 악이야, 너만 없어지면 돼’, 유치한 담론과 선동이 정치를 지배한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누가 ‘악’이냐만 따질 뿐, 해운의 부실한 재정구조 등 낡은 배가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모순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는 사이 낡은 배들은 여전히 위험한 항해를 하고 있고, 스텔라 데이지호가 침몰하여 선원 모두가 사망하는 등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문제가 이럴진대 다른 문제들은 어떻겠나.

이쯤에서 물어보자.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었나? 아닐 것이다. 다음 대통령선거까지 1년 남짓, 권력은 이미 시민사회와 야권에 넘어가 있었다. 오로지 그 ‘죽은 호랑이’를 덜어내기 위해 그 많은 촛불이 켜졌다고 하기에는 뭔가 섭섭하다.

그러면 뭔가? 정권교체를 위해서였나? 정치적 냉소가 여야 모두를 향하고 있었던 상황, 이건 더욱 아니다. 아니, 위험하기까지 하다. 행여 지금의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촛불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촛불의 의미는 이 모두를 넘는다. 누가 무슨 의도에서 시작하고, 표면적인 구호가 무엇이었건 이에 참여하고 동의한 국민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더 이상 불행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정치, 분노를 팔고 선동하는 정치가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에 대한 염원이 그 안에 있었다.

촛불은 이 갈망과 염원을 풀어 줄 혁명이 되어야 한다. 왕정을 공화정으로 바꾸고, 군부독재를 민주체제로 바꾸듯, 우리 정치의 근본을 바꾸는 혁명이 되어야 한다. 단지 ‘죽은 호랑이’를 덜어내기 위한 일로, 또 지금의 집권세력을 탄생시키기 위한 일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촛불은 미완(未完)이다. 아직 성공하지도, 승리하지도 않았다. ‘결국은 같은 길을 가는’ ‘같은 유형의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있는가 하면, 길 잃은 야당들이 정치적 미아가 되어 정치판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완을 두고 ‘성공’이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순간 촛불은 빛을 잃는다. 그 의미를 누구를 내쫓고 누구를 들이는 정도에 가두어버리기 때문이다. ‘승리’를 축하해서도, 그 승리의 챔피언이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승리는 패배의 반대말, 패배자들을 자극하며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심화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설이다. 하지만 촛불의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또 그것이 혁명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역설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촛불#촛불혁명#대통령 탄핵#참여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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