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진태 검찰총장, ‘정윤회 문건’ 성역 없이 수사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 검찰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다. 그제 검찰은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김진태 검찰총장을 자택으로 찾아가 이 사건에 대해 긴급 보고를 했다. 검찰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건에 나오는 핵심 의혹은 정 씨가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청와대 3인방’인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을 만나 “2014년 초·중반으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사퇴 시점을 잡고 있다”며 “정보지(속칭 ‘찌라시’) 관련자들을 만나 사전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정보를 유포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이들을 비서관으로 뽑았다. ‘비선(秘線) 실세’라는 그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 과연 사실인지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이 문건을 작성한 박모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에서 수사와 감찰 분야의 요직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건은 박 경정의 상관인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에게도 보고했다. 박 경정은 올해 2월, 조 전 비서관은 올해 4월 각각 청와대를 떠났다. 이 문건에 대해 청와대가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음에도 의구심이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일보 관계자들의 명예훼손 혐의를 가려내려면 정 씨가 청와대 3인방 등과 한 달에 두 번 모임을 갖고 청와대 내부 상황을 점검했다는 문건의 진위부터 가려내야 한다. 문건에는 청와대 인사 6명과 정치권 인사 4명 등 이른바 ‘십상시(十常侍)’의 명단과 직책까지 나와 있다. 정 씨와 관련자의 통화 기록과 모임 장소를 확인하면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

비서관 등 8명이 고소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가 검찰에 고소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언론 보도를 사법 처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빈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수사는 명예훼손 차원을 넘는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과거 유사한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사를 축소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검찰이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해서만 수사를 집중하거나 파장을 우려해 문건 내용을 덮으려 하다가는 특검 수사를 불러낼 수도 있다. 이번 사건 수사는 청와대의 ‘검찰 다잡기’로 검찰이 길들여졌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윤회#김진태#명예훼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