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 “국민 정부 설 때까지 쉬지 않을 것”…반정부 구심점 되나

  • 뉴시스(신문)

“이란의 해방, 국민의 존엄 회복과 세계 평화라는 배당금 가져올 것”
“100개 넘는 도시 시위, 자유와 국가통합과 함께 나의 이름 외쳐”
‘이란 번영 프로젝트’ 등 통해 집권 준비를 해왔음도 분명히 밝혀

ⓒ뉴시스
이란에서 지난해 말부터 리알화 폭락 등 경제 붕괴로 촉발된 시위가 연초들어 더욱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망명중인 레자 키루스 팔레비 왕세자가 8일 시민들의 저항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세계의 이목이 여러분을 향하고 있다. 거리로 나와 요구 사항을 외쳐 달라”고 말했다.

AP 통신은 “이번 시위는 팔레비 왕세자(65)가 이란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라고 그의 참여가 시위의 향방에 미칠 파장에 주목했다.

◆ “민주주의 이행을 이끌어갈 책임자로서 준비 되어 있어”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1979년의 한 해전인 1978년 미국으로 유학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레자 왕세자는 망명 생활 중에도 줄곧 이슬람 정부의 전복을 외쳤다.

2000년 개설된 것으로 그의 활동을 소개하는 ‘세속 민주 이란을 위한 옹호, 레자 팔레비’ 홈페이지 대문에는 “이란에 국민이 선출한 민주적인 국민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나는 쉬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의 다짐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6일 워싱턴 포스트(WP)에서 그의 이란 복귀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슬람 공화국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갖지 못했으며 47년 만에 국민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며 “이란의 해방은 이란 국민의 존엄성 회복 뿐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규모의 세계 평화라는 배당금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옥, 고문, 혹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시위대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이란 정권에게는 협박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베네수엘라에서 그 증거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서도 신정 종식을 통한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인권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 초까지 반체제 인사 등을 대상으로 최소 1500건의 처형이 집행됐고, 이는 전년 대비 급격히 증가한 수치”라며 인권 측면에서도 정당성을 잃었음을 강조했다.

◆ “100개 넘는 도시 시위, 자유와 국가통합과 함께 나의 이름 외쳐”

그는 이란 전역의 거의 모든 주와 1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위대는 자유와 국가 통합을 외치며 나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했다.

그는 이를 권력 장악의 신호가 아니나 막중한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며 폭정에서 벗어나 국민 스스로 선택한 민주적인 미래로 나아갈 통합적인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섰다며 왕조의 후계자가 아닌 민주주의로의 국가적 이행을 이끌어가는 책임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 이양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혼란, 분열 또는 장기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수년간 ‘이란 번영 프로젝트(Iran Prosperity Project)’ 등을 통해 집권 준비를 해왔음도 분명히 했다.

그는 정권 안정 과정에서 정권에서 이탈하려는 내부 인사들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미 성직자 정권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이란을 지지하고자 하는 정권 내부 기관 구성원들을 위해 안전한 소통 채널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 공백은 없을 것”이라며 “투명하고 국제적인 감시 하에 진행되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이란 국민들이 수 세대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통치 체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 “레자 팔레비 복귀, 이슬람 공화국 최종 붕괴의 신호”


마이클 루빈은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선임 연구원은 7일 ‘미들 이스트 포럼’ 기고에서 팔레비가 귀환하는 경우 많은 이란인들은 이를 이슬람 공화국의 최종 붕괴의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이란 시위는 이슬람 정권을 뿌리째 흔드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사형을 요구하고 있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혁명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 때문이든, 진심 어린 지지 때문이든 많은 이란인들이 레자 팔라비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며 그는 이란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야당 인사라고 소개했다.

루빈 선임연구원은 팔레비는 비록 군주제는 아닐지라도 입헌민주주의 질서로의 평화로운 이행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고 봤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란인들은 하메네이 협력자인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권력을 잡는 베네수엘라식 이행보다는 팔레비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선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팔레비가 이란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금 당장 돌아오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하메네이가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제 관건은 미국과 다른 지역 국가들이 이슬람 신정 체제의 몰락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가운데 어떻게 팔레비를 보호할 것인가라고 루빈은 분석했다.

팔레비가 귀국 직후 암살당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은 이라크 반군 활동조차 비교적 평온해 보일 정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 레자, 이슬람 혁명 이후 줄곧 망명 생활


레자는 1960년 10월 31일 테헤란에서 태어나 1967년 부친 모하마드 레자 샤 팔레비의 대관식 때 왕세자로 책봉됐다.

1978년 17세에 미국 텍사스주 러벅 리스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받기 위해 이란을 떠났다.

이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왕실 가족은 1979년 1월 이란을 떠나 레자는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미국 공군 훈련 프로그램을 수료한 레자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위를 취득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레자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기 위해 자원했지만 이슬람 정권은 거부했다.

‘세속 민주 이란을 위한 옹호, 레자 팔레비’는 그가 망명 생활 동안 조국 이란 국민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원칙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23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이란 국민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그의 종교적 독재 정권을 몰아낼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 이후 독재 정권을 몰아낼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25년부터 1979년까지 이란을 통치했던 팔레비 왕조는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었다.

레자 샤 팔레비가 세운 이 왕조는 카자르 왕조의 몰락을 딛고 일어나 이란을 대대적으로 근대화하고자 했다.

이란은 1941년 레자 샤의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왕의 시기 토지 재분배, 문해력 향상, 여성 권리 확대 등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전제 정치로 흐르고 군사적 탄압과 부패 등으로 이슬람 혁명에 의해 붕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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