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째 불길 확산에 16명 사망… 건물 1만2000채, 221조원 피해
세계적 미술관 게티도 긴급 대피
트럼프 “민주당 주지사 탓” 공격
앙숙 뉴섬 “비극을 정치화” 발끈
바이든 “전쟁터 같다”… 닷새째 타오르는 산불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산불 4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팰리세이즈 산불이 11일 부촌 브렌트우드 인근까지 번졌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주지사 등이 브렌트우드에 자택을 두고 있다(위쪽 사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가 폐허가 된 퍼시픽팰리세이즈의 한 주택에서 주민이 잔해를 뒤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평가받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이 닷새째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시내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망자가 16명으로 늘었고, 건물 1만2000여 채가 불에 타며 현재까지 재산 피해액이 1500억 달러(약 221조 원)를 넘어섰다. 산불 피해 면적이 서울의 4분의 1(156.3km²)에 달한다. 가장 불길이 센 팰리세이즈 지역의 진화율이 11%에 불과한 데다 강풍 경보가 12일까지 연장되며 주말이 고비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 상황에 대해 “전쟁터 같다(war scene)”며 “실종자가 많아 인명 피해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 강풍으로 산불 확산 긴장 고조
11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현재 로스앤젤레스 산불 화재 진압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강풍이다. 다소 잦아들던 바람이 이날 다시 강하게 불기 시작하며 강풍 예보가 12일 오후 2시까지로 연장됐다. 평균 시속 40∼80km, 최대 100km에 달하는 강한 돌풍이 이 지역을 강타할 예정이며, 건조한 공기와 더해져 화재 위험이 더 커졌다고 미 국립기상청은 밝혔다. 강풍은 15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길이 확산하면서 주민 대피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팰리세이즈 지역의 불길로 인근에 있는 세계적인 명소 ‘게티 미술관’ 직원들이 긴급 대피했다. 게티 미술관은 반 고흐, 렘브란트, 모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피해를 입은 작품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자택이 있는 브렌트우드도 인근까지 산불이 확산하며 대피 대상 구역에 포함됐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도 캠퍼스 인근까지 불길이 번져 17일까지 원격수업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까지 16만 명 이상이 대피 경고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당국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재로 인한 연기와 미세먼지가 호흡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패서디나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저수지와 펌프장이 파손돼 수돗물 음용 금지령이 내려졌다. 팰리세이즈와 이턴 지역 등에서는 약탈 우려로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야간 통금령이 내려졌다.
WP는 이번 산불 피해가 커진 건 기후 변화로 산불이 이전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데다 가뭄이 계속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화재 진압이 어려운 지역에 단독 주택들이 점점이 분포하고, 로스앤젤레스 지역 상수도가 대형 화재를 감당할 만큼 발달하지 못한 것도 피해를 키웠다고 전했다.
● 트럼프, 산불 피해 민주당 주지사 탓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일주일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산불을 정쟁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산불이 “민주당 소속 주지사인 개빈 뉴섬 탓”이라며 캘리포니아주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무능한 정치인들은 화재를 진압하는 법을 모른다. 뉴섬 주지사는 엄청나게 무능하다”고 비난하며 당장 사임하라고 요구했다. 또 뉴섬 주지사가 공공 안전보다 환경 정책을 중시하면서 산불이 난 지역에 수백만 갤런의 물을 끌어들이는 법안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뉴섬 주지사는 “비극을 정치화하지 말고 직접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서 상황을 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이 “완전한 허구”라며 “허위 정보를 퍼뜨리지 말라”고 말했다.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의 차기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며, ‘트럼프 저격수’로 불린다. 두 사람은 미 정치권에서 이름난 앙숙이다.
산불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로스앤젤레스 당국의 화재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크리스틴 크롤리 로스앤젤레스시 소방국장은 “시 당국이 소방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며 “소방관이 소화전을 열 때는 당연히 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화재로 맬리부 지역의 자택이 전소된 배우 멜 깁슨은 X를 통해 “뉴섬 주지사에게 헤어젤에 (돈을) 덜 쓰고 이런 재난에 대비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항상 단정하게 쓸어넘긴 머리 모양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뉴섬 주지사를 저격했다. 깁슨은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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