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럽 침공 위기 고조되자 나토 지휘부 방한 ‘러브콜’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3월 10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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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방위산업, 고비용·저품질에 재기 불능 상태… 한국 ‘민주주의의 무기고’ 기회

방위산업은 말 그대로 국가 방위를 위해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를 개발·생산하는 산업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가장 앞선 기술력이 적용되고,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구매자가 각국 정부로 한정되는 등 다른 산업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다.

수출 실행계약 2개월 후인 2022년 10월 한국에서 폴란드로 초도 출고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수출 실행계약 2개월 후인 2022년 10월 한국에서 폴란드로 초도 출고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유럽 각지에서 울리는 ‘러시아 침공’ 경고음
현재 전쟁 중이거나 전쟁 발발 가능성이 큰 나라에서 방위산업은 ‘사용자’, 즉 군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무기체계 개발 및 구매에 일선 군인들의 요구 조건이 가장 많이 반영된다. 전시라는 위급함이 우선시돼 때때로 기업 이익이 침해받기도 한다. 반면 전쟁 가능성이 거의 없고, 전쟁을 해본 지 오래된 나라에선 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방위산업이 기업 이익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돌아간다는 얘기다. 특히 산업 종사자와 그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결탁해 이권 카르텔을 형성할 경우 방위산업은 주객이 전도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바로 지금 유럽처럼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2년을 넘기면서 유럽은 냉전체제 붕괴 후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파병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러시아는 핵전쟁, 세계대전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 유럽 각국 정부·정보기관·군 고위 인사 입에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1월 독일 언론은 “독일 연방군이 푸틴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르면 2024년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한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독일군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은 “10년 안에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벨기에 육군참모총장, 네덜란드 국방참모총장, 이탈리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 스웨덴 민방위장관, 에스토니아 총리 등이 공식 석상에서 이르면 3~5년, 늦어도 10년 안에 러시아의 유럽 침공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과 러시아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은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곤 한다. 지난 1000년 역사를 짚어보면 러시아는 언제나 유럽으로 서진(西進)을 추구해왔고, 그 성공 여부가 국가 흥망성쇠와 직결됐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라루스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 ‘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루스국이 존재했을 때는 물론 이 나라가 여러 공국(公國)으로 쪼개졌을 때도 잦은 외침에 시달렸다. 영토 대부분이 대평원이라 천연 장애물 역할을 할 거대한 강이나 험준한 산맥이 없어 방어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동쪽은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진 우랄산맥과 중앙아시아 사막이 방벽 역할을 하고, 남쪽에는 흑해라는 천혜 해자(垓字)가 있긴 하다. 문제는 강력한 적이 즐비한 유럽과 이어진 대평원 지역이었다.

독일에서 폴란드, 발트3국과 벨라루스로 이어지는 지역은 너른 평원이다. 대규모 군대의 진군을 막을 수 있는 이렇다 할 큰 강이나 산맥이 없다. 이 때문에 중세 루스인이 세운 정치 공동체들은 튜턴기사단, 폴란드, 헝가리로부터 수시로 위협을 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때는 프랑스 대군이 현 독일 지역에서 출정해 직선거리로 1500㎞가 넘는 모스크바를 석 달 만에 주파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 100만 명은 폴란드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 1000㎞ 거리를 석 달 만에 돌파해 개전 초 소련군 200만 명을 압도했다. 러시아가 중세부터 현대까지 유럽 국가들의 침공을 막고자 현 벨라루스-폴란드-발트3국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을 핵심 안보 목표로 삼은 이유다.

재무장 적기 놓친 유럽
루마니아에 배치된 미국의 미사일 요격체계 ‘이지스 어쇼어’. [미 국방부 제공]
루마니아에 배치된 미국의 미사일 요격체계 ‘이지스 어쇼어’. [미 국방부 제공]
육상 완충지대 확보가 러시아라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바다로 나가는 통로를 개척하는 것은 번영을 위함이었다. 국가 번영의 기초인 무역을 위해선 항구와 바닷길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표트르 대제는 발트해 연안의 척박한 땅이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대한 항구도시로 만들어 천도했다. 부동항을 확보하고자 러시아는 흑해 일대로 남하하고, 동방정책을 펴 극동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러시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15년 미국은 이란 탄도미사일로부터 유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폴란드 북부와 루마니아 남부에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시설을 설치했다. 이지스함의 탄도미사일 방어 기능을 그대로 떼어 육상에 설치한 이지스 어쇼어는 러시아에 치명적 위협이다. 여기에 최신 요격미사일을 탑재하면 러시아가 모스크바 서부에서 쏘아 올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 핵미사일이라는 창을 휘두르며 싸울 때 미국에는 방패가 있고, 러시아에는 없는 심각한 전략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러시아가 이지스 어쇼어에 맞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대량 배치하자 미국은 옛 소련 시절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하고 핀란드·발트3국의 무장을 강화했다. 유사시 러시아 최대 무역항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또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반러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사실 미국이 이지스 어쇼어를 구축해 대러 압박을 시작했을 때 유럽은 재무장에 나섰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독일 정상과 말다툼까지 해가며 국방예산 증액과 재무장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요구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높여 재래식 군사력을 복원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미국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이들 나라의 국방정책은 국가 안보가 아닌 방산 이권 카르텔을 위해 수립되고 있었다. 안보정책과 방위산업 기조를 ‘국방’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전환할 경우 방산 이권 카르텔이 반발할 게 뻔했다.

유럽 국방정책이 이권 카르텔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는지는 독일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일 방위산업은 냉전 시절 뛰어난 성능과 합리적 가격, 우수한 생산성에 힘입어 서방 세계 표준 무기체계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독일 방위산업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기업 이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기체계 생산 속도가 느려져 비용이 폭증했다. 그렇게 나온 완성품 성능도 추락했다.

‘생산자 중심’ 유럽 방위산업
유럽산 무기는 사용자보다 생산자 위주로 기획·설계·제작·납품되기 일쑤다. 군 당국이 노후 장비를 대체하고자 합리적 가격에 빨리 납품해달라고 아우성쳐도 소용없다. 강력한 로비 능력과 노조원들의 표를 무기로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방산업계가 들은 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방산업체들은 일단 무기 획득 사업이 결정되면 최대한 많은 공장으로 일감을 분산해 작업 기간과 비용을 늘려 잡는다. 지난해 초 노르웨이 전차 도입 사업에서 성능·납기·가격·절충교역 등 모든 면에서 앞선 한국 K2NO 전차가 독일 레오파르트 2A7NO에 고배를 마신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현대로템은 경쟁 모델보다 낮은 가격으로 K2 계약 체결 후 6개월 내 초도분 24대를 납품하고 2025년 상반기까지 72대 전량을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독일 방산업체는 초도 물량 납품이 2027년에나 가능하다고 밝혔음에도 수주전에서 승리했다. 노르웨이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펼친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노르웨이 군 수뇌부가 국방장관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심지어 독일 방산업체가 성능 개량을 이유로 당초 제안한 것과 다른 모델을 납품하겠다고 통보했는데도 말이다. 유럽의 무기 조달 프로세스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나토 관계자들의 잇단 방한
독일 레오파르트 2A7 전차. [KMW 제공]
독일 레오파르트 2A7 전차. [KMW 제공]
유럽산 무기의 난맥상은 이뿐 아니다. 독일산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경우 4.5세대 전투기임에도 구입 가격과 유지비는 5세대 스텔스기인 미국 F-35보다 비싸다. 심지어 독일 공군이 보유한 109대 중 단 8대만 가동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한국 K2 전차가 대당 100억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고가(高價) 논란’에 휩싸였을 때 독일 레오파르트 2A7 전차 가격은 대당 400억 원을 찍었다. 독일군은 장갑차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부(副)무장인 기관총을 빼고 주문해 빗자루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뒤 거치대에 끼워 놓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 유럽은 평시가 아닌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 처했다. 유럽 각국 군 당국과 정보기관은 러시아의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대량의 무기를 조달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용자보다 생산자를 위해 돌아가는 유럽 방위산업은 이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국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 방위산업 전반에 팽배한 모럴 해저드가 한국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토 관계자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고 있다. 크리스토퍼 카볼리 미 육군대장이 나토 동맹작전 사령관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2월 29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같은 달 나토 정책기획관이 방한해 한국에서의 군수품 조달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유럽 방위산업 상황으로 볼 때 대량의 무기를 자체 조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에 도움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 방위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생산라인을 갖춰 완성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럽 안보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 한국도 무기·탄약 생산라인을 재정비해 대량의 무기를 공급할 준비에 나서야 한다. 한국이 동맹·우방국의 요청에 부응해 ‘민주주의의 무기고’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막대한 경제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카볼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작전 사령관(오른쪽)이 2월 2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신원식 장관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크리스토퍼 카볼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작전 사령관(오른쪽)이 2월 2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신원식 장관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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