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당국 “리커창 조문 말라” 청년층 단속… 反시진핑 번질까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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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집권-경제 침체에 민심 이반
추모열기 빌미 ‘제2 톈안먼’ 경계
일부 대학에 ‘발언-행사 말라’ 지시
李부고, 하루새 검색상위서 사라져… 런민일보 등 관영매체 축소 보도

리커창 유년시절 주택앞 추모 꽃다발…  검색 순위선 밀려나 28일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주택 앞에 하루 전 갑작스레 타계한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하다. 허페이=AP 뉴시스
리커창 유년시절 주택앞 추모 꽃다발… 검색 순위선 밀려나 28일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주택 앞에 하루 전 갑작스레 타계한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하다. 허페이=AP 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마지막 경쟁자’로 꼽히는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27일 갑자기 타계한 가운데 당국이 추모 열기 확산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장기 집권과 경제 침체로 시 주석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리 전 총리의 사망이 자칫 반(反)시진핑 정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역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추도식이 계기가 됐다는 점도 당국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당시 개혁 의지가 강했던 후 전 서기에 대한 추모 열기가 반정부 시위로 번졌고, 무력 진압과 유혈 사태가 빚어지자 큰 후폭풍이 일었다. 비슷한 일을 우려하는 당국이 일종의 ‘언론 통제’에 나서는 모습도 관측된다.

리 전 총리의 사망 이유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가 과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적이 있으며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수영하던 중 심장마비가 발생해 숨졌다고 보도했다. 후 전 총서기의 사인 역시 심장마비였다.

● 젊은층 추모 단속 나선 中

28일 SCMP는 중국 당국이 일부 대학에 리 전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조문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한 대학의 관계자는 SCMP에 “학생들이 자체적인 애도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학교가 원치 않는다.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불필요한 소란’은 톈안먼 시위를 뜻한다. 당국은 34년이 흐른 지금도 톈안먼 시위를 ‘1989년 춘하계 정치풍파’라고 지칭한다. 중국 명문대인 상하이자오퉁대의 한 강사 역시 “학교로부터 리 전 총리의 사망과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공개했다. 하이난대는 리 전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으로부터 ‘학생들이 소셜미디어 등에 추모글을 올리지 않도록 지도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국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젊은층의 민심 이반이 상당한 탓이다. 중국의 올 6월 청년실업률은 21.3%로 통계 작성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국은 이후 아예 청년실업률을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층이 ‘분배’를 중시하는 시 주석보다 ‘성장’을 외쳤던 리 전 총리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젊은층이 지난해 말 ‘백지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엄격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반발한 이들은 ‘시진핑 퇴진’ 구호를 외치며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 ‘댓글 차단’ 온라인 통제


리커창 유년시절 주택앞 추모 꽃다발…  검색 순위선 밀려나 29일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의 검색 순위 10위 안에는 그의 사망에 관한 내용이 없다. 당국이 언론 통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웨이보 화면 캡처
리커창 유년시절 주택앞 추모 꽃다발… 검색 순위선 밀려나 29일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의 검색 순위 10위 안에는 그의 사망에 관한 내용이 없다. 당국이 언론 통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웨이보 화면 캡처
리 전 총리가 유년기를 보냈던 안후이성 자택에는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고인이 살았던 집 앞에는 추모객 행렬이 이어지고 국화가 수북이 쌓여 발 디딜 틈이 없고, 일부 시민이 눈물을 흘리는 영상들도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웨이보, 바이두 등 중국의 주요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사망 다음 날인 28일 실시간 상위 검색어에는 대부분 사망 관련 소식이 올라왔으나 29일 이후 이런 모습이 싹 사라졌다. 이에 추모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 중국 당국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관영매체 또한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축소 보도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관영 신화통신 등은 부고만 간단히 처리했다. 이후에도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환추시보 등의 웨이보 계정은 아예 그의 사망 소식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댓글을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장례식을 위해 베이징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장례식 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시진핑#리커창#추모 단속#댓글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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