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왜 무너졌는가[김상운의 빽투더퓨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30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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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보실패의 역사 上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우방국에서도 거침없이 적국 요인을 암살하는 등 과감성과 실행력, 주도 면밀함에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모사드(해외 정보), 신베트(국내 정보)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이 하마스의 기습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보 실패란 정보 수집부터 분석, 배포, 정책결정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적시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정책 결정권자의 정보 무시 내지 왜곡에 의한 ‘정책 실패(policy failure)’도 크게 봐선 정보 실패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사, 정보, 재정 모두에서 하마스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이스라엘이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무얼까요. 한 국가의 사활이 오간 정보 실패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해답이 보입니다. 16세기 대영제국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9.11 테러, 중동전쟁까지 정보 실패의 역사를 두 회에 걸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정보사 분야의 거장 크리스토퍼 앤드루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의 저서 등 국내외 주요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거울 이미지’에 따른 오판
2017년 7월 가자 지구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가한 하마스 부대원들. 게티이미지
주요 정보 실패 사례들을 보면 기습의 단서를 어느 정도 사전에 인지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장소로, 어떻게 침입해 들어올지를 몰랐을 뿐 기습이 곧 도래하리라는 신호는 어느 정도 포착했다는 얘깁니다.

예컨대 하마스 기습 직전 이집트 정보기관이 이스라엘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만 주시하고 가자지구 위협은 무시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역사상 다른 정보실패 사례도 마찬가집니다.

6·25 전쟁 1년여 전인 1949년 2월 28일 CIA는 “미군 철수 이후 북한의 침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highly probable)”고 경고했죠. 9.11 테러 당시에도 미국 NSA가 2000년 1월 테러범 3명의 통화를 감청해 불순한 정황을 포착하고도 범행을 사전에 막지 못했습니다. 돌다리도 수십번을 두드려본다는 정보의 세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여러 요인을 꼽지만 그 중에서도 자국 관점에서 적국을 분석하는 이른바 ‘거울 이미지(mirror image)’ 효과를 듭니다. 철저히 상대국의 입장에서 의도를 분석해야 함에도 무의식 중에 자국 입장을 투영시킨다는 얘깁니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시각에서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드니 소통이 잘 안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첨단무기로 도배한 아이언돔(iron dome)과 아이언월(iron wall)이 있는 한 하마스가 국경을 정면 돌파하는 기습을 시도하지는 않으리라는 예단이 화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런 이스라엘의 시각을 간파하고 다량의 로켓과 드론, 행글라이더 부대 등으로 정면 침투를 감행해 허를 찔렀죠. 이스라엘이 무인 첨단기기라는 자국의 방어전략에 갇혀 적의 동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국 직전까지 갔던 50년 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의 압도적 공군력에 대응할 수 있는 방공망이 구축되지 않는 한, 이집트가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봤습니다. 또 시리아는 이집트 도움 없이는 경거망동 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결과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협공에 따른 초기 참패였습니다. 기습 직전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사위 아슈라프도 모사드에 비슷한 신호를 보냈지만 이스라엘의 오판은 끝내 바뀌지 않았죠.

과거사 경험으로 독소전쟁 오판한 스탈린
1941년 독소전쟁 당시 소련 영토로 진격하는 독일군.   위키피디아
1941년 독소전쟁 당시 소련 영토로 진격하는 독일군. 위키피디아
시계를 제2차 세계대전 때로 돌려보죠. 나치에 밀려 연전 연패하던 영국에 한줄기 서광이 비친 건 1941년 6월 발발한 독소전쟁이었습니다. 그해 12월 미국의 2차 대전 참전과 더불어 전쟁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죠. 그 2년 전인 1939년 8월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스탈린은 독일군의 기습 공격에 크게 당황합니다. 나치 침공 당시 소련이 보낸 지원열차가 독일을 향하고 있을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소련 정보당국이 독일군의 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사전 보고를 84차례에 걸쳐 올렸지만, 스탈린은 이를 무시합니다. 20년 전 러시아 내전 당시 영국, 일본 등 열강이 백군을 지원한 역사적 기억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죠. 영미 등 자본주의 제국이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볼셰비키 혁명관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스탈린은 독일 침공 정보를 자신과 히틀러를 이간질하려는 처칠의 음모로 규정하고, ‘역(逆) 정보’에 속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수령의 지시에 소련 정보기관은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죠.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주의 혁명관이라는 ‘거울 이미지’가 정보 실패로 이어진 겁니다.

2차 대전 때 진주만 공습 당시 정보 실패는 인종주의 편견이라는 거울 이미지가 작동한 사례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 항공기 360대가 일시에 기습을 감행해 미 해군 전함 5척, 경순양함 1척, 항공기 480대 등이 한꺼번에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자 루스벨트와 처칠은 충격에 빠집니다.

이들이 “조그마한 황색인”이라고 비하한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동양인을 멸시한 더글러스 맥아더도 “진주만을 공격한 조종사들이 백인 용병일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인종적 편견이라는 ‘거울 이미지’에 빠져 일본에 대한 정보활동을 소홀히 한 대가로 미국은 태평양전쟁 초기 항모 부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6·25 전쟁은 소련과 북한의 진의(眞意)를 오판한 미국의 정보실패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이 압도적인 핵 공격능력을 가진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기 힘든 상황에서 소련의 위성국인 북한이 쉽사리 전쟁을 벌이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CIA는 게릴라전 같은 제한 전쟁(limited war) 가능성만 백악관에 보고했습니다. 딘 러스크(Dean Rusk) 국무성 차관보가 전쟁 닷새 전인 1950년 6월 20일 “우리는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의도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단언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전면전 감행이었습니다. 미국이 자국의 핵 무장력을 앞세워 소련, 중국, 북한의 의도를 지레짐작한 실수는 전쟁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는 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보기관의 정치화가 낳은 실패
2003년 4월 미 해병대 전차들이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를 달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강한 당파성이 정보기관 불신을 낳아 정보 실패로 이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네타냐후가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비민주적 정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한 군부와 정보기관을 적대시한 데 따른 겁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정책 결정자들은 정보기관을 길들이려는 행태를 보이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선호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기관에 대해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간주하는 거죠. 이에 따라 정보기관은 인사, 예산권을 틀어쥔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정세를 왜곡하기 쉽습니다. 이 같은 정보기관의 정치화는 첩보의 세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현상 중 하나입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당시 WMD(대량살상무기) 정보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2004년 1월 8일 보고서에서 “이라크가 WMD를 폐기 또는 이동하거나 은닉했을 가능성은 없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WMD 위협을 조직적으로 왜곡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일으킨 이라크 침공 명분을 얻기 위해 정보기관이 나서 WMD 위협을 조작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CIA는 2001년 이라크가 암시장에서 알루미늄 튜브를 구입하려고 한 것을 핵무기 개발 증거라고 보고했습니다. 해당 알루미늄 튜브의 크기, 모양, 재질이 핵무기 부품과 전혀 다르다고 밝힌 타 정보기관의 분석은 무시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해당 알루미늄 튜브가 재래식 로켓용 부품이며, 핵무기와 무관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 CIA의 WMD 정보 출처 중 하나는 이라크인 망명자들이었는데 이것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사담 후세인 축출을 염원한 망명자들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WMD 존재를 허위로 보고했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정보기관 수장이던 프랜시스 월싱엄(1532~1590)은 정보의 정치화에서 벗어나 지배 이념과 어긋나는 인재를 과감히 등용해 성공한 사례입니다. 그는 영국 왕실을 피해 대륙으로 망명한 잉글랜드 구교도 인사들도 스파이로 고용해 정보 수집력을 키웠죠. 당시 영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인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스페인 내 신교도 세력을 제거하는 데 골몰한 것과 비교됩니다. 덕분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영제국의 빛나는 서막을 열 수 있었습니다.

기만 전술과 정보실패
6·25 전쟁 당시 38선을 넘어 남침하고 있는 북한군 부대. 동아일보DB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의 기만 전술도 이스라엘 정보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로이터 등 외신들에 따르면 하마스는 2년에 걸쳐 이스라엘과 화해 무드를 조성하면서 은밀히 군사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2021년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주민들이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하자, 이를 받아들이며 2년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자제한 겁니다. 가자 지구의 또 다른 무장단체 이슬람 지하드도 이 같은 위장 평화 공세에 가세했죠.

그러곤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 모형을 만들어 놓고 침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도 하마스가 노동자 파견 제안을 수용하는 등 유화적 자세로 돌아선 만큼 정면전을 감행하지는 않을 거라고 오판했습니다. 이스라엘군 관계자에 따르면 정보기관 고위관계자가 기습 몇 주 전 ‘하마스는 대규모 공격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6·25 전쟁에서도 기만 전술은 정보 실패를 초래했습니다(4회 중국이 인천상륙작전에 발끈한 이유: https://www.donga.com/news/List/Series_70020000000428/article/all/20231015/121676906/1 참고) 예컨대 북한은 전쟁 직전 해인 1949년 4월 세계평화옹호대회에 참가해 군비경쟁 및 전쟁예산 증가 반대를 주장하고, 그해 6월 29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해 평화통일 방안을 남한에 제안했습니다.

전쟁 석달 전인 1950년 3월에는 스톡홀름 평화대회에 참가해 군비 축소 주장에 찬성하고 북한 전역에서 서명 운동까지 벌였죠. 6월 19일에도 남한 국회가 동의한다면 통일 방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재차 제안합니다.

이와 함께 군사적 기만 작전도 벌입니다. 북한은 휴전선 부근으로 부대 배치 등 남침 준비를 대규모 야외 훈련으로 위장했죠. 또 일선 군인들에게는 공격 개시가 임박해서야 작전 지침을 통보하는 등 보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6·25 전쟁 직전 남한과의 빈번한 소규모 군사 충돌은 북한의 전면전 남침 징후를 위장하는데 활용됩니다(정보기관의 오판과 정보공유 실패에 대한 내용은 다음 10회에서 다룹니다)

[참고 문헌]
크리스토퍼 앤드루·박동철 역 〈스파이 세계사〉 1, 2, 3 (한울·2021년)
Foreign Policy 〈What Israeli Intelligence Got Wrong About Hamas〉 (2023.10.11)
석재왕 〈한국전쟁 발발과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정보실패〉(국가안보와 전략 63호, 2016년)
전웅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세종연구소, 2005년)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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