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고문·살인·암매장…우크라 시신 발굴지 ‘지옥 방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8일 2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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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에서 송진 향기와 시신 썩는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두 손이 묶인 채 팔과 다리가 부러진 시신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5개월여 만에 수복한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주 도시 이줌에서 러시아군이 점령기간 저지른 감금 고문 살인 암매장 같은 전쟁범죄 흔적이 쏟아져 나왔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협조적인 민간인을 고문하기 위한 감옥도 운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까지 이줌 집단 매장지에서 시신 445구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올 3월 세계를 경악케 한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대학살’보다 더 한 참극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시신 발굴지 ‘지옥 방불’…악취 진동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3월부터 이줌 공습을 시작해 4월 완전 점령한 뒤 다섯 달 만인 지난주 퇴각했다. 이줌 주민들은 “그 기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줌 외곽 숲에서 시신 집단 매장지를 발견하고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16일 시신 40여 구가 발견된 이후 시신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나무십자가가 꽂힌 땅속에서 발견된 시신 다수는 두 손이 묶여 있거나, 목에 밧줄이 감겨 있었다. 대부분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팔과 다리가 부러진 시신은 고문 흔적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시신으로 발견된 한 여성 팔목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일부 시신은 러시아군 공습으로 숨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 남성은 “5월 16일 아내가 거리에서 러시아군 집속탄에 맞아 죽었다”며 울부짖었다. 집속탄은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될 만큼 잔혹한 살상무기다. 이 남성은 숲속 매장지에서 아내 시신을 찾아냈다. 미국 CNN방송은 “숲에 폭우가 내린 뒤에도 시신 냄새가 씻겨가질 않았다”고 묘사했다.

● 생존자 “전기고문 당해”… 국제사회 분노
이줌 생존자들은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고문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3월과 9월 두 차례 러시아군에 끌려간 출판업자 막심 막시모프 씨(50)는 경찰서 지하 구치소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막시모프 씨는 “군인들은 나를 ‘우크라이나 스파이’라며 의자에 앉히더니 내 손가락에 악어 이빨 모양 클립을 채웠다. 그것은 구식 소련군 야전 전화 기계에 연결돼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병사가 기계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면서 고문이 시작됐다. 내 맥박은 미친 듯 뛰었고 눈과 귀가 멀었다. 이후 쓰러졌다”고 말했다. 고문은 40여 분 간 이어졌다. 그는 “일부 군인은 자신들이 벨라루스에서 왔다고 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를 강력히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대국민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는 어디에나 죽음을 남긴다. 부차 마리우폴 그리고 이제 불행히도 이줌. 러시아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 의장국 체코의 얀 리파브스키 외무장관은 17일 “21세기에 민간인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다”며 특별 국제사법재판소 설치를 촉구했다. CNN은 유엔 소식통을 인용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CHR) 팀이 가능한 빨리 이줌으로 이동할 것이며 전쟁범죄 수사팀도 뒤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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