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우크라 피란민에 대연회장 내준 루마니아 호텔 [사람,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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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번호 붙인 매트리스 깔아
난민 2000여명에 임시 쉼터 제공
우크라 피란민 200만명 넘어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루마니아 수체아바 지역의 한 4성 호텔은 지난주부터 결혼식 등의 행사가 열리던 연회장의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이곳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쉼터로 제공하고 있다. 수체아바=AP 뉴시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루마니아 수체아바 지역의 한 4성 호텔은 지난주부터 결혼식 등의 행사가 열리던 연회장의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이곳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쉼터로 제공하고 있다. 수체아바=AP 뉴시스
올가 오크리멘코 씨(34)가 추워서 낑낑대던 반려견 ‘놀리’와 들어간 곳은 4성급 호텔 연회장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내리 사흘을 길에서 보낸 터였다. AP통신 기자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나요?” 오크리멘코 씨는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을 쏟았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오크리멘코 씨는 러시아군 폭격 5일째인 이달 1일 피란을 결심했다. 하지만 차를 몰고 나선 지 20분 만에 도시 중앙 자유광장에 포격이 쏟아졌다. 차를 버린 그는 놀리를 데리고 1000km 넘게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겨우 국경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과 멀지 않은 루마니아 수체아바에 있는 만다키 호텔은 지난주부터 대연회장에 예약된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 오크리멘코 씨 같은 피란민을 위한 임시 쉼터로 꾸몄다. 7일(현지 시간) 현재 난민 2000여 명, 반려견 100여 마리가 다음 거처를 정하기 전까지 머물고 있다. 수체아바 시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난민들을 파악해 매트리스 번호 옆에 ‘예약’ ‘비어 있음’ 표시를 붙인다. 오크리멘코 씨는 60번 매트리스에 짐을 풀었다.

82번 매트리스에 있는 넬랴 나호르나 씨(85)는 81년 만에 생애 두 번째 피란을 왔다. 1941년 네 살 때 나치 독일군 공습으로 폭탄 파편에 맞아 다쳤다고 한다. “엄마가 나를 안고 뛰어서 부상자를 호송하는 마지막 트럭에 태웠어요….”

이번에는 딸 올레나 예파노바 씨(57)가 80년 전 자신의 어머니처럼 손녀를 데리고 러시아군 침공 첫날 국경을 넘었다. 예파노바 씨는 고향에 있는 남편과 아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예파노바 씨 뒤, 34번 매트리스에는 안나 카르펜코 씨가 노란 풍선을 가지고 6세 아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남부 오데사에 살던 그는 공습이 심해지자 짐을 쌌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살던 그에게 남편은 “전쟁이 끝나면 꼭 결혼식을 올리자”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날 이들이 머물던 매트리스에는 모두 ‘비어 있음’ 표시가 붙었다. 이들이 탄 독일행 버스가 호텔을 떠나자 추위에 떠는 난민들을 한가득 태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유엔은 8일까지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200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루마니아 호텔#우크라 피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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