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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이방카와 맞장 뜨는 뉴욕 검찰총장…쿠오모 주지사 성추행도 밝혀낸 여걸[정미경 기자의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입력 2022-01-25 14:24업데이트 2022-01-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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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오프: 레티샤 대 이방카” “레티샤-이방카 대결의 승자는 누구?”

최근 레티샤 제임스 미국 뉴욕주 검찰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법정 출두를 요청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자녀 이방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은 뉴욕주 검찰로부터 3년 넘게 세금 및 보험 사기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을 해달라는 요청은 트럼프 그룹에 대한 조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두 여성 간의 대결 구도로 압축시켜 보도하고 있습니다. 산전수전 겪으며 바닥부터 올라간 흑인 여성 검찰총장이 백인 상류사회 출신의 이방카 트럼프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은 인종과 계급, ‘강 대 강’ 여성 대결 차원에서 흥미 유발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그룹의 불법 금융거래를 조사 중인 레티샤 제임스 미국 뉴욕주 검찰총장(왼쪽)은 최근 불법 금융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이방카 트럼프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오른쪽) 등에 대한 법정 출두 명령을 법원에 요청했다. 더그리오닷컴


재임 때부터 각종 의혹 때문에 의회, 법무부 특별검사팀, 각종 위원회 등으로부터 많은 조사를 받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뉴욕 검찰 조사가 가장 무섭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주 검찰의 뛰어난 수사력에 대한 반증입니다. 이 조직을 이끄는 여걸(女傑)이 올해 62세의 제임스 총장입니다.

뉴욕주 검찰총장은 700명의 검사와 1800명의 수사관 등을 통솔합니다. 급여 수준도 전국 검찰총장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각 주 정부마다 있는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은 주의 모든 법률문제를 총괄하는 법무장관에 해당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지인 뉴욕주의 검찰총장은 다른 주의 검찰총장과는 위상 자체가 다르며 연방 법무장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뉴욕주 검찰총장의 상당수는 이후 주지사에 당선되는 출세 코스를 밟았고, 대통령의 야망까지 불태운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시키는 영리한 정치 감각까지 갖춘 제임스 총장은 현재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슈메이커’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2021년 8월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성추행 의혹 조사 기자회견에서 레티샤 제임스 뉴욕 주 검찰총장(가운데)이 존 김 전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오른쪽), 앤 클라크 변호사(왼쪽)와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로닷컴


제임스 총장이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난해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수사 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제임스 총장은 1시간여 동안 독립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가 11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4개월간의 조사 결과가 담긴 165쪽짜리 보고서도 공개했습니다. 한국계인 준 김 전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 등과 함께 연단에 올라 수사 결과를 논리정연하게 밝히는 제임스 총장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조사위 권한을 제임스 총장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강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에게 권한을 부여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제임스 총장의 의중대로 꾸려진 조사위는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입증했습니다. CNN은 쿠오모 주지사 아래에 있지만 독립적인 수사권을 고수한 제임스 총장에 대해 “‘화이트 보이 클럽(white boys’ club)‘에 속한 전임 총장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20여년 넘게 뉴욕 브루클린에서 흑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클린턴힐스에 거주하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가운데)이 지역 축제에서 주면들과 어울리는 모습. 뉴욕주 검찰 홈페이지


2019년 취임한 제임스 총장은 여러 면에서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뉴욕 주 최초의 흑인이자 여성 검찰총장입니다. 또한 검찰 조직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임 총장들과 달리 그녀는 법률구조협회(LAS)라는 시민단체의 관선변호인 출신입니다. 학교도 워싱턴의 전통적인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 출신으로,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뉴욕 주내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전임 총장들과 차이가 납니다.

수사력을 집중하는 사건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임 총장들이 주로 월가의 부정행위 조사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제임스 총장은 취임 후 일성으로 내놓은 것은 전미총기협회(NRA)에 대한 조사였습니다. “부정부패와 공금 오남용 투성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NRA 해체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공화당의 ’돈줄‘이자 최대 로비단체인 NRA가 실제로 해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제임스 총장은 그동안 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NRA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NRA가 포위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역대 뉴욕주 검찰총장들은 화려한 업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정치역정이 순조롭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뉴욕주 검찰총장 시절(2007~2010년) 미국 대학들의 학자금 대출 관행을 바꿔놓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대학 학자금 부실 대출 조사를 지휘했습니다. 쿠오모에 이어 자리에 오른 에릭 슈나이더만 전 총장(2011~2018년)은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수사를 이끌며 주목받았지만 정작 본인이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뉴욕주 검찰총장 재직 때 쌓은 화려한 업적을 발판으로 주지사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엘리엇 스피처 전 총장(오른쪽)은 고급 매춘조직 이용했다는 섹스 스캔들로 물러났다. 부인 실다 여사(왼쪽)와 해명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욕타임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리엇 스피처 전 총장(1999~2006년)입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를 기소해 일약 스타 검사가 됐습니다. 검찰총장이 된 뒤에는 금융기관들의 불공정 관행을 적발하는 성역 없는 수사로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주지사에 당선됐지만 ’엠퍼러스 VIP 클럽‘이라는 고급 매춘조직의 상습 이용자인 것이 드러나면서 당선 1년 2개월 만에 물러났습니다. 스피처 총장의 부인 실다 여사가 슬픈 표정으로 옆에 서서 “남편을 용서한다”고 밝힌 기자회견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전임 총장들과 비교할 때 제임스 총장은 출신 배경과 수사 집중 분야 등이 많이 다릅니다. 뉴욕에서 경제환경이 열악한 브롱크스 출신인 그녀는 기득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사로 주민들 사이에 인기도 높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여서 독선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보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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