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무력으로 진영 지키려는 푸틴 행동은 자승자박”

  • 뉴시스
  • 입력 2022년 1월 14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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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들과 러시아의 역사적 공통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공산권의 맹주이던 과거와 달리 이데올로기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갈수록 더 무력에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침공을 준비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군대를 파병하는 한편 벨라루스에도 파병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강대국이 동맹국을 힘으로 억누르는 건 크게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 소련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당시엔 적어도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옛 소련 연방을 지켰고 그 이념은 자본주의 서방과 존재를 겨루는 다툼의 근간이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옛 공산국가들에까지 확대되면서 푸틴에 대한 인접국들의 충성서약이 독재자들의 자리 보전 목적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콜럼비아대학교 정치학과 티모시 프리예 교수는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들을 묶는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 주변국들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그를 가두는 새장이 돼가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늙고 인기없는 독재자들을 지탱하기 위해 갈수록 더 무력에 의존하자 이들 독재자들에 대한 자국내 야당 세력은 물론 서방의 압박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 결과 푸틴 대통령이 막겠다고 나선 위협이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품으로 달려가고 있다. 국내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벨라루스가 도발을 일으키자 유럽이 단합해 맞섰다. 카자흐에선 장기독재에 반대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내 정적과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푸틴이 자신의 통치를 강화하려고 늘상 강조하는 말들이 예전만큼 잘 먹히지 않는다”고 프리예교수가 말했다.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겁을 내는 배경으로 종종 색깔혁명이 꼽힌다. 2000년대 들어 일부 옛 소련 연방 국가들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이다. 푸틴과 추종세력들은 지금도 색깔혁명이 러시아를 무너트리기 위해 서방이 공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색깔혁명에 대한 푸틴의 본격적인 대응은 2012년에 시작됐다. 러시아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이다. 시위대 대부분은 러시아 중산층 시민들이었고 한때 푸틴을 지지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시위에 나서자 푸틴 정부내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비밀정보기관에 의존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강해졌다.

갈수록 강경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온 푸틴 세력은 야당을 탄압하고 서방에 맞서는 인접국 지도자들을 지원하는데 몰두했다.

그 결과 푸틴 대통령은 자신처럼 권위주의적 강경파 지도자만이 민주주의와 서방의 영향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믿게 됐다.

그렇지 않은 다른 지도자들은 힘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대통령이 축출된 2014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새 집권세력을 설득해 러시아와 동맹을 맺도록 하지 않았다. 대신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침공하고 크림반도와 반군세력 지역을 합병했다.

이 전략이 전체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서방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 한때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의견이 갈렸던 우크라이나 유권자들이 반러로 급격히 돌아섰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민주화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만 간주하고 무력침공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위협으로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공공연히 동맹을 맺는 것은 막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또 미국이 러시아의 기득권을 더 인정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일 뿐이고 까딱하면 또 하나의 구소연방 회원국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보게될 수도 있다.

주변국 독재자들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들은 권력이 집중된 한 사람이 제도를 무시하고 통치함에 따라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부패하며 경제성장이 더뎌지는 끝에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다.

카자흐가 좋은 예다. 장기독재자가 후임에게 권력 이양을 하는 과정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 위주로 구성된 2500명의 군대를 카자흐에 보내 소요 진압을 도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도 긴장이 심상치 않다. 이같은 상황은 푸틴과 그를 지지하는 주변국 지도자들 간에 서로를 힘으로 지켜줘야만 하는 위태로운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미시간대학교 권위주의 연구자 에리카 프란츠 박사는 독재자들은 분쟁을 촉발하지만 결국 분쟁에서 패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제멋대로 통치하는 사람은 정책을 두고 거래를 할 필요가 없어서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위험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겁내기 때문에 푸틴에게 협력하지만 그들의 통치가 낳는 부작용이 갈수록 푸틴을 힘들게 만든다.

프란츠 박사는 “각종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일부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지만 냉전이 끝난 뒤 중국이나 쿠바 등 소수 국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독재자들로 하여금 겉으로라도 표면적으로라도 가장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독재자들이 자국 국민들에게 보다 적은 자유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벨라루스가 이같은 문제의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야당 세력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면서 힘을 얻자 대통열이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유럽국들과 외교적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자 푸틴이 걸려 들었다.

러시아의 영향력을 의식하는 벨라루스의 야당세력들 일부가 러시아와 대화 신호를 보냈지만 러시아는 독재자를 지지키로 하면서 이들의 제안을 묵살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푸틴은 벨라루스나 카자흐에서도 독재자들을 통해 탄압을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불신과 위협을 기반으로 하는 이같은 영향력 구축방식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계속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겁내온 ‘위협’을 부르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자신이 의지하는 지지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엠마 애쉬포드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나토의 대응에 대해 “(푸틴의 행동이) 서방 군사력의 동부 진출을 촉발할 것”이지만 “바보같은 일이며 자멸적이라고 우리가 생각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멈추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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