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 침공설에 “원래 러시아 땅, 서방이 우리 위협” 강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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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면 연례 기자회견
내년 1월 제네바서 미국과 협상 “공은 그들에게 넘어가”

푸틴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 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9)이 러시아의 내년 초 우크라이나 침공설에 대해 “러시아가 오히려 위협을 당하고 있다”라고 일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유발된 새로운 냉전 갈등의 원인은 미국, 유럽 등 서방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이라고 러시아 언론들은 평가했다.

● 우크라 사태는 오히려 서방의 위협 탓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전시관 모스크바 마네주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입장을 직접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실제 일어날 수 있냐는 질문에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준비하는 것 같다”며 “우리는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의 위협에 대응하면서 우리 안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돈바스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수시로 군사적 충돌을 벌이는 지역이다. 푸틴은 이날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는 과거 러시아의 땅”이라며 “구소련 붕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땅이 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긴다”며 “돈바스 주민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러시아는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푸틴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47)에 대해 “전쟁 종식, 민스크 평화협정 이행을 약속했음에도 급진적 세력의 영향으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에 10만 명 이상 포진되면서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사례처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경계 중이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례 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의 영토이며, 오히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유럽 확장, 우크라의 나토 가입 추진 등 서방이 러시아를 위협한다는 점을 전 세계에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고 모스크바 타임스는 전했다.

푸틴은 이날 나토의 동진(東進)에 대해 수차례 비판했다. 그는 “나토가 우리를 5번이나 속였으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캐나다 혹은 멕시코에 러시아가 로켓을 전달한다면 미국을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17일 우크라이나 긴장 완화를 위한 러시아-미국 조약 초안을 공개했다.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거부하는 한편 러시아 인근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에 무기를 배치하지 말 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라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를 다시 한번 연례회견에서 강조한 것이다.

다만 푸틴은 이날 “내년 초 미국, 나토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며 “공은 그들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내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 최악의 사태는 막자는 제안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스포츠를 정치화’ 비판


사진 AP 뉴시스
푸틴은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은 기자회견 내내 옹호하고 나섰다. 중국 기자가 이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중국은 제1의 우방”이라며 “안보,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을 추진한 것에 대해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비난했다. 푸틴은 “미국이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이고 있다”며 “그렇다고 중국이 세계적인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달 6일 중국 당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 등 인권 문제를 이유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정부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어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동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푸틴이 작정하고 비판한 셈이다.

푸틴은 자신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전 러시아진보당 대표(45)에 대한 인권 탄압에 대한 질문에도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에게 나발니 독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푸틴은 나발니가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을 겨냥해 “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러시아의 이익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 천연가스 폭등은 유럽 탓


사진 AP 뉴시스
푸틴은 최근 유럽 내 가스 가격 폭등에 대해서 “러시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에 대해 “아무 잘못이 없다. 유럽이 가스관 추가 용량을 주문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푸틴은 “안정적인 가격대의 가스 공급을 원한다면 가스프롬과 장기 계약을 맺으면 되지만 유럽연합이 단기 계약을 맺고 있다”며 “장기 계약을 하면 천연가스 가격이 3~4배, 심지어 7배까지 저렴해진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이어 “실제 독일 등 가스프롬과 장기 계약을 맺은 국가들은 현재 낮은 가격의 장점을 누리고 있다”며 “심지어 이웃 국가에 가스를 판매해 이익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로 전달되는 러시아산 가스 일부가 우크라이나에 재판매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이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 수송물량 경매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3일째 해당 가스관의 공급이 중단됐다. 21일 유럽 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1월 선물가격은 한때 1000㎥당 2189달러(약 260만 원)까지 상승해 지난 10월의 사상 최고가 기록(1900달러)을 갱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로부터 전체 가스 수요의 약 40%를 공급받고 있다.

러시아가 또 옛 소련국 벨라루스와 연합국가를 형성해 EU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통합에 대한 대화에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작업이 진행”이라며 “연합국가를 건설하고 있지만, 통합은 EU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푸틴은 자국 경제와 코로나 상황에 대해 난관론을 펼쳤다. 그는 “러시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부터 더 잘 회복되고 있다”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5%, 실업률은 4.3%, 실질 소득이 3.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러시아의 집단 면역률이 59.4%로 내년 1분기 말이면 80% 집단 면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2001년부터 매년 연말에 내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질의응답 형식의 연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화상으로 회견이 진행됐지만 올해는 전 세계 취재진 507명이 모여 4시간 이상 진행됐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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