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월드시리즈에도 등판한 ‘토마호크 응원’… “인종차별” “팬덤의 표시일 뿐”[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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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호크’ 하면 뭐가 떠오를까요? 우선 요즘 인기 높은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있습니다. 토마호크는 소 1마리에서 7대 정도만 나오는 최고급 부위입니다. ‘토마호크 미사일’도 유명합니다. 미국이 군사 개입을 할 때마다 신호탄으로 발사하는 최첨단 미사일입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에서 크고 웅장한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토마호크는 원래 미국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작은 손도끼를 말합니다. 이 토마호크가 요즘 미국에서 화제입니다. ‘토마호크 도끼 찍기(Tomahawk Chop)’ 논란입니다.

미국 프로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인 트루이스트파크에서 월드시리즈 4차전을 관람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 브레이브스 응원 동작인 ‘토마호크 도끼 찍기’를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 뉴욕포스트
미국 프로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인 트루이스트파크에서 월드시리즈 4차전을 관람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 브레이브스 응원 동작인 ‘토마호크 도끼 찍기’를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 뉴욕포스트

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마호크 찍기 논란에 가세했습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하 브레이브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4차전을 관람했습니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올스타전 개최지를 변경한 데 반발해 MLB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한지 6개월 만에 애틀랜타 트루이스트파크 경기장에 나타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브레이브스 팬들과 어울려 토마호크 찍기를 선보였습니다.

토마호크 찍기는 팔을 도끼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브레이브스팀의 응원 동작입니다. ‘적을 작살낸다’는 의미입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하면 곧바로 토마호크 찍기가 연상될 정도로 팀을 대표하는 응원 율동입니다. 내려찍는 동작과 함께 “계속 찍어라(Chop On)”라는 응원 구호를 외칩니다. 팬들이 일사불란하게 이 동작을 취하면 경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토마호크 찍기에 반대해왔습니다. 자신들의 아픈 역사가 스포츠 응원의 소재로 쓰이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원주민들은 응원 동작뿐 아니라 브레이브스라는 팀 이름에도 불만을 제기해왔습니다. ‘용자(勇者)’라는 뜻의 ‘브레이브스’는 거슬러 올라가면 1800년대 말 원주민 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브레이브스는 몇 년 전부터 아메리칸인디언 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속 찍어라”는 응원 구호를 “A를 위하여(For the A)”로 대체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팀이 애틀랜타 주방위군 본부를 방문했을 때 군인들이 토마호크 찍기 응원으로 환영 인사를 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팀이 애틀랜타 주방위군 본부를 방문했을 때 군인들이 토마호크 찍기 응원으로 환영 인사를 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올해 브레이브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자 토마호크 찍기 응원이 등장할지 여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지난해 범사회적인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와 맞물려 원주민 단체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이 응원을 하지 말도록 어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리즈 1차전부터 대대적으로 토마호크 응원이 등장했습니다.

팬들이 토마호크 응원 물결을 이룬 것은 MLB와 브레이브스 구단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팬데믹 때문에 중립구장에서 반쪽짜리 대회로 열렸던 것과 달리 올해는 정상적으로 월드시리즈가 개최되자 MLB는 흥행 성공을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토마호크 응원을 해 달라”는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인종차별과는 관계없다”는 공개 발언으로 응원단의 기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유독 스포츠 경기에 원주민의 역사가 많이 배어있습니다. 응원 동작이나 도구, 팀명, 마스코트 등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과거 유럽 이주민과의 정복전쟁에서 보여준 아메리칸 원주민의 용맹성과 투지가 스포츠 정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프로 스포츠팀이 생겨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실제로 원주민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아메리칸인디언 출신의 스포츠 스타 짐 소프(1887~1953). 육상 미식축구 야구 등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the Greatest American Athlete)”로 일컬어진다. 뉴욕타임스
아메리칸인디언 출신의 스포츠 스타 짐 소프(1887~1953). 육상 미식축구 야구 등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the Greatest American Athlete)”로 일컬어진다. 뉴욕타임스

미식축구팀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원주민을 상징하는 ‘레드스킨스’라는 팀명의 높은 브랜드 가치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지난해 후원 기업들의 보이콧 대상이 되자 결국 개명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내년 쯤 새로운 이름이 발표될 거라고 합니다. 레드스킨스 헬멧에 박힌 유명한 원주민 로고도 ‘W’로 대체됐습니다.

프로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로 이름을 바꾸고 마스코트인 와후 부족장 로고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식축구팀 캔자스시티 치프스는 팀명은 유지하는 대신 응원 도구에서 추장 깃털 모자를 금지시켰습니다. 캐나다 미식축구팀 에드먼턴 에스키모스는 에드먼턴 엘크스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밖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농구), 시카고 블랙호크스(아이스하키) 등도 원주민과 관련된 팀명이나 마스코트를 바꾸라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아메리칸인디언 단체들의 인종차별 비판을 받아온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지난해 개명 작업에 돌입했다. 선수 헬멧에 박힌 원주민 로고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워싱턴먼슬리
아메리칸인디언 단체들의 인종차별 비판을 받아온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지난해 개명 작업에 돌입했다. 선수 헬멧에 박힌 원주민 로고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워싱턴먼슬리

중고교 대학 스포츠에는 원주민 팀명과 마스코트가 더 많습니다. 지난해 미국 최대 원주민 단체인 아메리칸인디언전국회의(NCAI)에 따르면 원주민과 관련된 학교 스포츠 팀명으로 ‘인디언스’(799개) ‘워리어스’(417개) ‘브레이브스’(208개) ‘치프스’(181개) ‘레드스킨스’(95개) 등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리건 워싱턴 주등 원주민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학교 스포츠팀에 원주민 관련 이름이 많이 들어갑니다. 학교 스포츠팀들도 최근 몇 년 사이 이름과 마스코트 등에서 원주민 연관성을 많이 제거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계 팬들이 주목하는 월드시리즈에서 토마호크 찍기 응원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 비판론이 가열됐습니다. “워싱턴 레드스킨스도 팀명을 바꾼 마당에 왜 토마호크 응원은 계속돼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반면 팬들은 “스포츠 응원은 팬덤의 표시일 뿐 심오한 인종차별적 의미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도끼 찍기는 인디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응원인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발끈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과 스포츠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입니다. 전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이념 대결 모드가 오락적 요소가 강조되는 프로 스포츠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죠.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가 확고하게 조성된 이상 토마호크 찍기도 서서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응원을 사랑해온 팬들, 이 응원만 등장하면 카메라를 관중석으로 돌렸던 중계 방송사들은 섭섭하게 됐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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