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본토 방어에만 핵사용’ 검토… 英-佛등 “동맹에 대한 배신” 반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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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美, 核태세 검토보고서 준비”… 타국 선제공격용으로 쓰지 않아
동맹 공격당해도 ‘핵우산’ 없어… 동맹국들, 새 정책 막으려 로비
공화당 등 미국내 비판도 커져… 韓 “美, 核억제력 제공정책 굳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용으로는 쓰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보호받기를 원하는 동맹국들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고 미국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로비전에 돌입했다.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반도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FT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새로운 핵무기 전략 지침을 담은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준비 중이다. 여기에는 ‘선제 사용 금지(no first use)’와 ‘단일 목적 사용(sole purpose)’ 원칙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제 사용 금지는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미국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단일 목적 사용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합의된 정의가 없다. 이날 FT는 “미국이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a direct attack on the US)에 대항하기 위해, 혹은 공습을 당한 뒤 보복 공격을 하는 아주 협소한 상황에서만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정책”이라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18년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단일 목적 사용을 ‘핵무기는 핵 공격을 저지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분석했다. 올 9월 16일 미국과학자연맹(FAS) “단일 목적이라는 표현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정확하고 합의된 정의는 없다”고 밝혔다. FAS에 따르면 이 표현은 상대성 이론으로 핵 폭탄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폭탄 비축의 유일한 목적은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국은 폭탄을 비축해야 하지만 사용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데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 이후 미국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핵무기 정책을 유지해 왔다. 중국 러시아를 향해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유럽 아시아의 동맹을 보호한 것이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새 정책을 선언한다면 이는 ‘미국의 동맹이 공격당할 땐 미국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그리고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할 때도 사용 금지, 단일 목적 사용 정책을 지지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추진했다가 일본 등의 반대로 포기했다.

올 초 미국은 이런 내용을 동맹국들에 전달하며 의견을 구했는데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FT가 보도했다. 미국 의회의 한 중진 의원은 “동맹국들은 집단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FT에 말했다. FT는 새 정책이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이 자체 핵무장에 나서도록 자극하고 지역 내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월 초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를 방문했을 때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등 동맹국 관계자들이 미국의 새 핵무기 정책을 막으려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고 FT는 전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31일 “미국 측은 현재 검토 중인 NPR 동향을 우리 측에 공유하고 있다”며 “한미 연합방위 태세 및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핵 억제력 제공 정책)은 굳건하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커졌다. FT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철수, 오커스(AUKUS) 출범과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 등 주요 정책에서 동맹국들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제임스 리시는 “새로운 핵무기 정책은 동맹국에 대한 ‘완전한 배신’”이라고 FT에 말했다. 리처드 폰테인 신(新)미국안보센터 소장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러시아 중국 북한의 위협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지금은 선제 사용 금지 같은 정책을 검토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익명의 유럽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이를 추진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에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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