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마스크, 이번엔 백신 두고 두쪽난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5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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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 랄리시 중심가. 간호사 등 의료진을 비롯한 200여 명의 시위대가 주의회 건물과 주지사 관저 등을 돌며 시위를 벌였다.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시위대는 이날 병원 측이 직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따르지 않으면 해고한다는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나의 몸은 나의 선택’, ‘강제 백신 접종=의학적 강간’ 등의 표현이 담겼다.

이 지역 대학병원들은 최근 “환자와 직원,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다”면서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으라고 요구했다. 주정부 방침도 다르지 않다. 로이 쿠퍼 주지사(민주당)는 이날 브리핑에서 시위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실망스럽다. 환자 가까이서 일하는 의료진이라면 백신을 맞는 것은 책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두 쪽으로 갈라져 싸웠던 미국인들이 올해는 백신 접종을 두고 국론분열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다시 많이 늘면서 최근 백신 접종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이에 반발하는 시위도 잦아지고 있다. 반면 백신 접종자들은 최근의 코로나19 재확산 원인을 비접종들에게 돌리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백신 접종 의무화를 두고 미국인들의 여론은 팽팽히 맞서 있다. 미국 CNBC방송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의무화에 찬성한 반면, 46%는 반대했다. 찬성과 반대 비율의 차이가 오차범위 이내였다. 고령자일수록 백신 접종 의무화를 지지하고 젊을 수록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효과에 대한 인식도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이날 비영리단체 카이저패밀리재단이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백신을 맞지 않은 성인의 절반 이상(53%)은 ‘백신을 맞는 것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오히려 건강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백신을 맞은 성인의 대부분(88%)은 그와 반대로 답했다. 또 미접종자의 57%는 언론이 팬데믹의 심각성을 과장해서 보도한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백신 접종자 중에서는 17%만 그렇게 생각했다.

극명하게 갈리는 생각의 차이를 반영하듯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는 양상도 나타난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성인 999명에게 ‘코로나19 재확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었는데 백신 접종자들의 79%가 ‘미접종자 책임’이라고 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감염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이들이 최근의 코로나19 재확산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접종자들은 외국에서 온 여행객(37%), 주류 언론(2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1%) 등을 주로 꼽았다. 자신들 같은 미접종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10%밖에 안 됐다.

이처럼 백신과 관련해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지자체는 물론, 각 기업들도 직원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가 이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신 접종에 큰 인센티브를 줘서 접종을 유도하려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접종을 강제하는 기업들이 있다”고 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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