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업체 배제만으로는 한계”…美 중심 통신시장 새판 짜기

이건혁 기자 입력 2021-04-14 21:51수정 2021-04-1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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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오픈랜(OPEN RAN, 개방형 무선 접속망)의 확산을 추진하는 건 중국 통신장비업체를 배제하는 것만으로는 시장 질서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중국 업체의 점유율을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성비를 무기로 한 중국 업체의 공세를 이겨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기술 표준 자체를 바꾸는 전략을 통해 세계 통신 시장에서 미국의 기술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 H/W에서 S/W로…미국 중심 새판 짜기
오픈랜은 통신 장비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를 다른 업체들도 만들 수 있도록 개방하는 기술이다. 통신사로부터 납품 계약을 따낸 삼성전자, 화웨이, 에릭슨 등 장비 제조사들은 기지국 장비와 함께 이를 운영할 소프트웨어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넘긴다. 하지만 오픈랜이 도입되면 통신사는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현재 글로벌 통신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는 미국 업체들이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5세대(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1위 화웨이(32.8%)와 3위 ZTE(14.2%)를 합쳐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는 6.4%로 5위이며 미국 업체는 없다. 하지만 오픈랜이 도입되면 통신장비 시장에서 퀄컴, 시스코, 알티오스타 같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미국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화웨이가 소위 ‘백도어(해킹 프로그램)’ 장치를 통해 각국의 중요 기밀을 중국 정부에 전달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 장비의 전면 사용 금지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이 비용 문제를 들어 동참을 꺼리고 독일도 ‘화웨이 포위망’에 참여를 거부하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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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가까운 학계·관계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중국의 도전: 기술경쟁을 위한 미국의 새로운 전략’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5G 시장에서 화웨이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오픈랜 등 소프트웨어 기반의 체제를 구축해 장비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달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오픈랜 촉진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중국 통신장비 배제에 동참한 영국, 일본 등도 오픈랜 구축에 적극적이다. 영국 정부는 6월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로 오픈랜 협력을 채택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내고 있다.

● 통신사는 환영, 삼성전자는 복잡
오픈랜이 글로벌 시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 5, 6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재의 ‘턴키(동시 발주)’ 방식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미국의 중요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화웨이와 같은 신뢰 불가능한 업체에 줄 수 없다”며 오픈랜의 투명성을 앞세워 중국 통신장비 업체를 견제해나갈 의지를 드러냈다.

화웨이는 미국의 오픈랜 추진으로 시장 지배력이 약화될 것을 경계하고 나섰다. 화웨이는 13일(현지 시간) 열린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오픈랜은) 5G에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점유율이 낮은 노키아와 삼성전자의 입장은 복잡하다.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지만, 자칫 통신사에 저가 장비만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통신사들은 대체로 미국 주도의 오픈랜이 표준이 되면 5G 투자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중국 화웨이, ZTE 등의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장비를 도입했다가 장비 호환성 탓에 5G 장비도 중국산을 써야 했던 통신사들이 오픈랜을 활용하면 다른 업체 장비를 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국내 통신사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장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장 지배력 변화와 이동통신사들의 5G 투자 비용, 오픈랜 도입에 따른 중소규모 장비 업체들의 성장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건혁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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