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입시도 바꿨다?…‘포스트 코로나’ SAT운명은[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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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들의 삶의 상당부분을 바꿔놓은 가운데 미국 ‘수능’에 해당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SAT)도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요즘 미 대입 현장에서는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SAT 일정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수험장들이 줄줄이 폐쇄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둘째는 대학들이 SAT를 고려하지 않거나 선택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정책을 바꾼 것입니다. SAT 점수가 필수요소가 아닌 선택사항이 된 겁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수능시험 SAT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프린스턴리뷰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수능시험 SAT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프린스턴리뷰
우선 첫째 사건부터 볼까요. SAT는 일년에 7번 치러집니다. 올해 3월 이후 SAT는 완전히 취소됐다가 지난달부터 재개됐습니다. 하지만 응시생의 절반 정도 밖에는 시험을 못 치르고 있습니다. 수험장이 운영된다 해도 거리두기 수칙 때문에 한 교실에 10명 정도 밖에는 수용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자기 동네 수험장이 없어 인근 도시로, 주(州)로 시험 보러 가는 ‘원정 SAT족’이 생겨나고 있죠. 한때 ‘재택 시험’ 방안도 추진됐지만 부작용을 고려해 없던 일로 했습니다.

둘째, SAT 차질을 감안해 대학들이 속속 입시요강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test-optional’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SAT가 옵션이 됐다’는 말입니다. SAT 점수를 제출하지 않아도 내신, 자기소개서, 과외봉사활동 등 다른 요소들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노스웨스턴대도 SAT 옵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SAT 수험장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포브스
코로나19 때문에 SAT 수험장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포브스
코로나19 때문에 대학들이 갑자기 입학조건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을 점수벌레로 만든다” “학생들의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비판들이 SAT들 두고 오랫동안 제기돼 왔습니다. 코로나19가 SAT 회의론을 가속화시키고 있을 뿐이죠.

일각에서는 “이게 바로 윈-윈”이라며 기뻐합니다. 학생들은 힘들게 SAT 안 봐서 좋고, 대학들은 귀찮게 SAT 점수 안 따져도 되니까요. 낮은 SAT 점수를 장애물로 여겼던 학생들은 이제 꿈꾸던 대학에 원서를 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SAT 응시 열기는 옵션제 논의가 있기 전에 비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SAT에 대비해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뭐가 어떻게 바뀌는 건지 불안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코로나19 와중에 휴가를 내고 몇 시간을 운전해 아이를 SAT 수험장에 데려다 주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습니다. 또 좋은 대학들일수록 옵션제를 적용하는 기간을 올해, 또는 내년 입학생 정도로만 제한하고 있습니다. 임시 적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죠.

SAT 옵션제를 택하는 미국 대학들이 늘고 있다.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
SAT 옵션제를 택하는 미국 대학들이 늘고 있다.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
미국은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빨리 달려들어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각 주의 자치권이 크다보니 중앙정부가 획일적인 제도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요. 뿐만 아니라 대입은 학생과 대학 간의 쌍방 플레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행정 당국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크지 않죠. 여기에 내신 자소서 등 비(非)SAT 기준에 내재된 주관적 요소들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한 SAT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민도 그만큼 커졌죠. ‘SAT 점수를 제출할까 말까’에서부터 ‘고등학교에서 어떤 과목들을 들어야하나’까지 고민은 천차만별입니다. ‘코로나19가 교육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지적을 이해할 만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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