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야권 범민주파의 압승은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 보여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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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저명 정치학자 이반 초이 중문대 교수 인터뷰
“홍콩의 자유주의-본토의 애국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차이가 근본 모순”
“선거 결과는 민생개선 만으로는 시민 불안 해소 못한다는 것 증명”

이반 초이(54) 홍콩중문대 교수
이반 초이(54) 홍콩중문대 교수
“범민주파의 압도적 승리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자유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홍콩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음을 보여줍니다.”

홍콩에서 가장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시사평론가로 꼽히는 이반 초이(54) 홍콩중문대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홍콩은 자유주의를 숭상하는 반면 중국 본토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숭상한다”며 “중국 본토와 홍콩 간 이데올로기 차이가 이번 홍콩 시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자 야당인 범민주파의 구의원 선거 압승으로 이어졌다”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4일 구의원 선거 전후 각각 대면과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초이 교수는 “중앙 정부가 최근 수년간 홍콩의 자유를 줄이고 애국주의 교육 등을 통해 국가안보를 강조하면서 두 가치의 충돌이 갈수록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자유가 제한될 것이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홍콩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왔고 홍콩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이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선거 직전 인터뷰에서 “범민주파가 크게 약진하겠지만 현재 의석이 워낙 열세이기 때문에 과반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높은 투표율과 범민주파의 압도적 구의원 선거 승리는 그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선거 뒤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 홍콩중문대, 이공대 등의 폭력 사태에도 중앙과 홍콩 정부에 대한 민심의 반감(反感)과 분노가 전혀 줄지 않았으며 시위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중앙과 홍콩 정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중앙 정부가 선거 결과에 대해 큰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내다봤다.

6월 100만 시위로 촉발된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운동은 반(反)정부 시위로 격화된 뒤 반중(反中) 시위로 변했다. 선거로 모든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으로 보는 이는 적다. 이면에 숨은 모순과 갈등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이 차이가 근본적인가.


“홍콩의 핵심 가치는 자유주의다. 홍콩 시민 대부분은 개인을 집단보다 중요하게 인식한다. 중국 본토는 집단이 개인보다 위에 있다. 국가안보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 완전히 다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건가.


“5년 전 우산혁명 때보다 지금 더 반향이 훨씬 크다. 그때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했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 때부터 선거 민주주의가 없었다. 민주주의가 중요하지만 많은 구세대들은 민주주의 부재에 익숙해졌고 그리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시위가 쟁취하려는 건 훨씬 기본적인 자유다. 구세대를 포함해 홍콩은 한동안 자유를 비교적 많이 누려 왔다. 자유를 맛본 이들에게서 자유를 몰수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회의 호응이 매우 크다.”

―왜 자유 제약의 문제가 발생했나.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둘러싼 심층 모순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일국양제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과도적 방안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와 완전히 다른 홍콩의 가치들을 바꾸려 한다. 왜 홍콩은 애국하지 않느냐고, 국가를 가장 중요한 지위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중앙 정부는 일국을 강조하지만 홍콩 시민은 양제를 강조한다. 중앙은 홍콩에 일국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홍콩인들은 갈수록 양제에서 멀어진다고 인식한다.”

초이 교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시 주석에 권력이 집중됐고 중국과 서방 국가들과 적대 관계가 심각해지면서 국가주권 수호를 앞세우기 시작했다”며 “이 과정에서 홍콩이 ‘구멍’이 되면 안 된다며 전면적인 통제권을 추진해온 것도 사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정부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중앙 정부와 관련된 것이기에 그들은 난처하다. 그래서 민생문제를 거론한다. 빈부격차, 집값이 너무 비싸져 젊은이들이 집을 사지 못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시위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와 그들이 파괴한 대상을 보라. 그들이 겨냥한 대상은 중앙과 홍콩 정부, 홍콩 내 중국 기업이지 부동산 회사가 아니다. 범민주파의 압승은 민생문제 해결로는 민심을 달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초기 평화 시위가 폭력 충돌로 변했다.

“홍콩 반환 뒤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해온 경찰은 이전엔 강경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 충돌이 심각해지면서 많은 홍콩 시민들이 경찰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시위대와 경찰 모두 상대에 대한 ‘이에는 이, 피에는 피’ 식의 증오가 너무 커졌다.”

―젊은 시위대가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은.


“당연히 우리 같은 구세대에게는 평화 이성 비폭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미국에 기대려는 것에도 구세대는 그리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을 찾지 말고 비폭력으로 해결하자’는 우리에게 ‘당신들의 방법으로 무슨 효과가 있었는가’고 묻고 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무엇이 필요한 때인가.


“중앙 정부는 홍콩을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 홍콩 반환 이후 첫 10년은 충돌이 있으면 시간을 주고 천천히 해결했다. 지금은 너무 조급하게 해결하려 해 문제가 커졌다. 시위대는 ‘사지(死地)에 몰려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찬성하지 않는다. 홍콩이 너무 큰 손상을 입을 것이다.”

홍콩=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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