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메르켈 “과거의 망령과 대면”…극우 돌풍에 쓴소리

  • 뉴시스
  • 입력 2019년 5월 28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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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정책, 국가가 충분히 보살피는 방식 필요"
"트럼프와는 공통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여성들, 정치·언론·재계에 더 많이 진출해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을 휩쓴 극우 돌풍에 경고했다. 그는 나치 독일을 암시하며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결과물을 보여줬는지 말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메르켈 총리가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27일(현지시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28일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지지율 급상승은 이미 예견됐었다”며 이에 대응하지 못한 유럽은 이제 “과거의 망령과 대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23~26일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反)난민·반(反)EU을 주장하는 2개의 우파 포퓰리즘 정치세력은 총 171석을 차지했다. 현재 의석수 154석에서 17석이 늘었다.

유럽의회 의석의 총 751개임을 감안하면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세력이며, 힘을 합친다면 제1당인 중도 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에 맞설 만한 크기다.

독일 역시 극우 열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5년 전(7.1%)보다 3.9%포인트 높은 11%를 득표했다.

독일 내 극우 움직임의 가장 최근 사례는 유대인 남성들의 전통 모자 ‘키파’ 논란이다.

‘독일 유대인 생명 보호 및 반유대주의와의 투쟁을 위한 연방정부 위원회(BMI)’의 펠릭스 클라인 위원장은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장소에서 유대인들에게 키파를 착용하라고 조언할 수 없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 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는 전년 대비 약 20%가까이 늘었다. 독일 내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공격은 같은 기간 37건에서 69건으로 증가했다.

클라인의 발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맥락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선 이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발언이자 종교 활동 억압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불행히도 독일에는 늘 일정 수 이상의 반(反)유대주의자들이 있다”며 “독일 경찰의 보호가 필요 없는 유대교 회당(시너고그), 유대 어린이집, 유대인 학교는 없다”고 현재 독일의 상황을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0월 기독민주당(CDU)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21년에는 총리직도 내려놓을 예정이다. 18년 만에 그를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유럽 이민사태에 대한 그의 대처였다. 메르켈 총리는 시리아, 이라크 등 전쟁 국가의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우호적인 난민 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반감을 샀다.

메르켈 총리는 “이민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다”며 “난민들이 이 나라에서 충분히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에 난민이 흡수될 때 비로소 난민에 의한 폭력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독일 녹색당(GR?NEN)의 선전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CDU도 정책 변화를 꾀할 때라고 풀이했다. 독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20.5%를 득표하며 CDU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메르켈 총리는 “이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기후변화 같은 문제와 연결돼 있다”며 “이(기후변화)는 우리 당에게도 큰 문제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기후변화와 관련해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독일 환경주의자들은 메르켈 총리의 환경 정책은 늘 산업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형식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웃 국가 프랑스가 석탄과 석유 활용을 빠르게 줄이는 동안에도 독일은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공통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는 모호한 대답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사람들은 독일 총리를 미국 대통령의 샌드백으로 생각한다”는 질문에 “우리는 꾸준히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모든 독일 총리들은 미국 대통령과 관계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며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독일과 유럽이 실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이 모든 게 미국의 ‘마셜 플랜’에서 시작됐다”고 미국과 독일의 오래된 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전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는 질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순조롭게 시작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총리직에 오른 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정치인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냐는 CNN의 질문에 메르켈 총리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 이후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네덜란드의 막시마 여왕이 내린 페미니스트의 정의에서 답을 찾았다”며 “막시마 여왕은 페미니스트란 여성들이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같은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정치, 언론, 재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직 여성과 남성이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분명 긴 총리직을 수행하며 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됐다”면서 “우리는 높은 위치에 있는 더 많은 여성들이 필요하다. 이는 남성들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지지자들은 그의 퇴진이 메르켈로 상징되는 세계주의와 자유주의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메르켈 총리는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고, 왜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지, 왜 늘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야 하는지, 왜 편협함에 맞서 싸우는지, 왜 인권침해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지 그 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중도 정치인들에게 과제를 남겼다.

이번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의 CDU 연합은 28.9%를 득표하며 1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속한 유럽의회의 정치그룹 유럽국민당(EPP)은 크게 세력이 꺾였으나 여전히 의회 제1당이다.

CNN은 EPP가 유럽의 정책권을 쥐고 있다며 메르켈 총리는 퇴임 후에도 유럽 비전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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