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어산지, 망명 2487일 만에 체포…美 송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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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정부와 기업들의 민감한 기밀정보를 온라인에 폭로하며 명성을 얻은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가 미국으로 송환될 위기에 놓였다. 미국 법무부는 11일(현지 시간)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어산지를 컴퓨터 침입 음모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히고 영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송환을 요구했다.

이날 공개된 기소장에 따르면 어산지는 2010년 1월에서 3월 사이 미 육군 정보분석 요원이었던 첼시 매닝(개명 전 브래들리 매닝)과 공모해 국방부 컴퓨터를 해킹해 기밀 자료를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매닝은 어산지의 도움을 받아 국방부 내부 시스템에서 기밀 정보를 다운로드받아 이를 위키리크스로 전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어산지는 최고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공소장은 지난해 3월 서명됐으며, 미 검찰은 어산지를 추가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CNN은 전했다.

어산지가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자 생활을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2010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 기밀 70만여 건을 폭로하며 1급 수배 대상에 올랐던 그는 같은 해 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영국에서 스웨덴 검찰 측의 체포영장을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을 냈으나 2012년 패소했다. 그는 스웨덴으로 송환될 경우 결국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영국 법원의 보석 결정을 무시하고 에콰도르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부는 이날 갑작스럽게 어산지의 망명자 신분을 철회했다. 대사관은 영국 경찰의 진입을 허용했고 어산지는 대사관 생활 2487일 만에 체포됐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날 “어산지가 망명 관련 국제 규정을 계속 위반했기 때문에 보호 조치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측은 어산지에 타국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올 1월에도 위키리크스는 바티칸과 관련한 기밀 문서를 공개했고, 에콰도르는 위키리크스의 계속되는 폭로에 어산지가 개입하고 있다고 의심해왔다.

이날 영국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은 어산지가 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구금하기로 했다. 마이클 스노 판사는 “(어산지의 행동은) 자신의 이기적인 관심사를 넘어설 수 없는 나르시스트의 행동”이라고 말한 뒤 그를 사우스워크 형사법원으로 넘겼다. 그는 사우스워크 법원에서 최대 1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또한 다음달 2일엔 미국의 범죄인 송환 요청을 심리하기로 했다. 어산지의 변호인 제니퍼 로빈슨은 “미국의 송환요청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 언론들은 어산지의 체포가 ‘러시아 스캔들(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2016년 8월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측의 이메일을 폭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사실상 도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클린턴은 “어산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기간 동안 “위키리크스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11일 어산지 체포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며 “내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을 앞둔 마지막 달 위키리크스를 164번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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