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문’ 쓴 무협소설 대가, 진융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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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신조협려-천룡팔부 등 14편 모두 인기… 수십억부 팔려
베이징 초등생 필독도서 오르기도… 알리바바 마윈 회장도 열혈팬
‘밍보’ 창간해 홍콩 유력지로 키워

“삶이 즐거울 것 무엇이며 죽음이 괴로울 것 무엇인가. … 세상사람 불쌍한 것은 걱정이 많음이로다.”(소설 ‘의천도룡기’에서)

강호에서 별이 떨어졌다.

1980년대 국내에서 ‘영웅문’(정식 명칭 ‘사조삼부곡’) 시리즈로 돌풍을 일으켰던 홍콩 무협소설의 태두(泰斗) 진융(金庸·본명 자량융·査良鏞·사진) 작가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가족들은 이날 오후 진 작가가 홍콩 양허(養和)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진 작가는 1955년 펴낸 첫 무협소설 ‘서검은구록’ 이래 1972년 마지막 작품 ‘녹정기’까지 주옥같은 무협소설 14편을 출간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등이 모두 히트하며 세계적으로 수십억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정식 계약 체결 없이 출간된 고려원 영웅문 시리즈가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후 2003년 김영사가 정식 판권을 계약해 출간했다.

진 작가는 현지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던 무협소설을 문학성과 대중성을 지닌 작품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추앙받는다. 2007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내 모든 소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가 핵심 목표”라며 “순수냐 통속이냐는 잣대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울림을 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 무협소설가”라고 표현했다. ‘사조영웅전’은 베이징(北京) 초등학생 필독 도서 명단에 포함된 바 있으며,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하는 ‘진쉐(金學)’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중문과도 그의 소설을 부교재로 채택한 적이 있다.

실제로 진 작가는 세계적으로 3억 명이 넘는 두꺼운 독자층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도 그의 열혈 팬이다. 그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별칭이 ‘소오강호’에서 주인공에게 천하제일 무공을 전수하는 ‘풍청양’이라는 인물이다.

1924년 저장(浙江)성에서 태어난 그는 쑤저우(蘇州)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상하이(上海)의 다궁(大公)보에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1948년 홍콩으로 온 뒤 1959년 밍(明)보를 창간해 유력지로 키워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과 고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진 작가는 ‘춘향전’ 줄거리를 외울 만큼 한국 고전문학에도 관심이 높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영웅문#무협소설#진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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