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꼭두각시가 아니다”…中 차관 공세 경계 나선 아프리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4일 2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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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아프리카 정상회의 폐막
中대사 정치적 지지 발언 요구하자, 나미비아 대통령 언론 앞에서 발끈
시진핑 “600억 달러 원조 추가 제공” 阿지도자들은 ‘채무 함정’ 우려
에티오피아 등에선 채무위기 현실화

“우리가 뭘 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당신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은 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폐막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인 지난달 22일 나미비아에서 중국 대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장이밍(張益明) 주나미비아 중국대사는 정상회의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하면서 게인고브 대통령에게 정상회의 때 “중국과 아프리카의 경제관계를 높게 평가하고 중국에 대한 아프리카의 정치적 지지를 단언해 달라”고 요구했다. 게인고브 대통령 취임 이후 나미비아가 중국을 지지해온 사실도 확실하게 해달라고 했다.

게인고브 대통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도 연설문 작성가가 있다. 당신의 지도가 필요 없다”고 발끈했다. 장 대사가 중국의 나미비아 신공항 및 기초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인프라 투자 등을 통한 중국의 해외 경제영토 확장) 협정 등을 설명하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런 프로젝트들이 중요한 성과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자 또다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게이고브 대통령은 “사업 제안에 대해 장관들과 얘기하라. 내게 직접 말하지 말라. 나는 (사업의) 투명성 증진을 원한다”고 반박했다. 나미비아 매체인 ‘더 나비미안’은 언론이 지켜보는 중에 벌어진 일이라며 이를 보도했다.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에) 600억 달러어치의 차관 원조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은 현재까지 1420억 달러어치의 차관을 아프리카에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아프리카가 2020억 달러(약 225조 원)의 금융채무 관계로 엮이게 되는 셈이다.

시 주석은 3일 개막식에서 “중국과 아프리카는 운명공동체”라며 “중국은 아프리카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중국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며 원조에 어떤 정치 조건도 내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대규모 차관과 투자는 반길 만한 일이지만 ‘채무 함정’에 대한 위기의식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곳곳에선 중국 차관을 갚지 못하는 채무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중국 차관이 가장 많이 투입된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59%에 달하자 올해 7월 중앙은행 관료가 중국 채무를 줄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에티오피아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채무 균형 문제를 중국과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채무가 전체 국가 채무의 70%에 달하는 케냐는 중국 자금을 빌려 건설한 철도 프로젝트 운영 첫해에 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이 지난해 첫 해외 군사기지를 세운 지부티는 2016년 국가 채무가 GDP의 85%에 달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영국 BBC 중문판은 4일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채무함정의 큰 선물을 줬나”라고 꼬집었다. 로이터도 “아프리카에 채무를 제공하는 중국수출입은행과 중국개발은행이 차관의 세부사항을 잘 공개하지 않는 등 책임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 여론과 관련해 시 주석은 3일 “중국과 아프리카 협력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중국과 아프리카 인민만이 발언권이 있다. 어떤 이도 상상과 억측으로 중국 아프리카 협력의 현저한 성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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