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25만명에 가짜백신 접종… 中보건당국 10개월간 쉬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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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광견병 백신 SNS 폭로 이어 부적합 DPT백신 유통 드러나
부모들 “홍콩 가서 백신 접종” 분노
당황한 中정부 여론통제 나서… 阿순방 시진핑 “엄중 문책” 지시


21일 웨이신(중국의 카카오톡 격)의 한 공식 계정에 오른 글로 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까지 나서 ‘엄중 문책’을 지시하는 등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백신의 왕’이란 제목의 이 글은 중국의 대형 백신회사 창춘창성(長春長生)바이오테크놀로지가 만든 광견병 백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중국 부모들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이 부적합 판정을 내린 이 업체의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백신이 이미 25만 명의 아기들에게 접종됐다는 사실이다. DPT는 중국의 백신 접종 계획에 따라 생후 3, 4, 5개월, 18개월 아기에게 4차례 접종해야 한다.

이 업체의 DPT 백신은 지난해 이미 문제가 발견돼 같은 해 10월 지린(吉林)성 식품의약품감독관리국이 조사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은 23일 “이 업체가 시장에 내놓은 백신에서 품질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이 업체의 DPT 백신에 백신 성분을 보충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국민들은 “품질에 문제가 없으면 왜 백신 성분 보충 작업을 했느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5일 문제의 업체를 조사한 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이 이 업체가 광견병 백신 제조 과정에서 생산 기록과 제품 검사 기록을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백신 생산을 중단시키고 사용하지 않은 광견병 백신을 수거한 뒤 공안(경찰)에 사건을 넘겼다”고 보도했다. 이 업체는 행정처벌에 따라 우선 벌금 344만 위안(약 5억7000만 원)을 물게 됐다.

얼핏 보면 정부 당국이 폭로에 재빨리 대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광견병 백신 문제가 폭로되기까지 10개월 동안 아기 25만 명에게 불합격 백신이 접종된 사실을 쉬쉬한 데 대해 중국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 여배우 장쯔이(章子怡)는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격)에 “아이에게 (접종하는) 백신이 모두 가짜면 불가능한 게 뭐가 있겠나”라며 비꼬는 글을 올렸다. 중국의 대표적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京東)그룹 최고경영자(CEO) 류창둥(劉强東)도 웨이보에 “가련하다! 부모의 마음. 이 사건(의 진상)을 수많은 아이를 위해 설명해야 한다. 절망적인 부모들을 위해 올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사회의 공정을 위해!”라고 올렸다. 한 중국 누리꾼은 “25만 명의 아이들에게 불합격 백신을 접종한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윤은 인민의 생명과 바꾼 것이다. 사형 판결을 부탁한다”고 올렸다. 웨이보에는 “이 국가는 이미 공신력이 없다. 미국이었으면 적어도 300억 달러(약 33조 원)의 벌금을 물리고 회장은 30년형에 처했을 것이다. 실망이다. 우리나라”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중국의 부모들은 “이제 외국 백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홍콩에 가서 백신을 맞히겠다”며 당국에 대한 불신을 보였다.

심상치 않은 비판 여론에 당황한 중국 지도부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23일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 중이던 시 주석은 “(이번 사건의) 성질이 악질이고 경악스럽다”며 “끝까지 조사해 엄중히 책임을 물으라”고 지시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22일 밤늦게 “이 사건은 도덕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반드시 인민들에게 명명백백히 설명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중국 당국은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해 언론과 여론 통제에 나섰다. 여론을 촉발시킨 글 ‘백신의 왕’은 웨이신에서 삭제됐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가짜백신#시진핑#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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