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짓밟은 악마… 징역 175년 단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6일 03시 00분


20여년간 美체조 국가대표 160명 성폭행한 주치의
판사 “사형집행 영장 서명… 감옥 밖으로 못 나간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을 거쳐 간 선수 160여 명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미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55)가 24일 최장 징역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시간주 랜싱법원의 로즈메리 아킬리나 판사는 이날 판결문에서 “당신에게 선고를 내릴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가선 안 된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나는 당신의 사형집행 영장에 서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사르는 이미 지난해 12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았다. 아킬리나 판사는 이날 성범죄 혐의 등으로 175년형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의무 복역 기간을 40년으로 명시했다. 즉 나사르가 가석방 신청을 하려면 60년형과 40년형을 더해 100년을 채우는 2117년(154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175년형은 판결 가이드라인에 따른 최대치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나사르는 선고에 앞서 “나로서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어떻게 죄송하다고 해야 할지 그 깊이와 넓이를 표현할 말이 없다”고 사죄했다. 하지만 아킬리나 판사는 그가 자신에게 보낸,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내던지며 “이것이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증거다. 당신에게는 (치료를 위해) 내 애견도 보내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선고에 앞서 7일간이나 열린 피해자 증언 때 희생양이 됐던 여성 156명이 한 명씩 나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증언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씩 걸었던 스타들도 수치심을 이겨내고 법정에 나와 나사르의 추악한 범행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 다정한 선생님 가면을 쓴 악마

나사르는 왜소한 체격에 소심한 인상을 가진, 다정다감하고 일에 열정적인 의사였다. 나사르는 1986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대표 여자 체조팀 주치의로 일했고, 올림픽도 4차례나 참가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벗겨진 가면 뒤에는 추악함이 흘러넘쳤다.

나사르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 대부분은 10대 미성년자였다. 가장 나이 어린 소녀는 6세였다. 심지어 선수의 부모가 방에 함께 있는 상황에서도 대담하게 성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피해자들 중 가장 먼저 나사르를 고발한 레이철 덴홀랜더는 “2000년 등이 아파 그를 찾아갔는데, 그는 가슴 등을 더듬었고 속옷을 벗겼다”며 “당시 나는 15세였다”고 말했다. 수년 전 피해를 당한 에밀리 모랄레스(18)는 “그는 내 엉덩이에 젤을 바르고, 장갑을 끼지 않은 다른 손으로 날 추행했다”고 폭로했다.

나사르는 심리 조작에 뛰어났다.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다쳐 외로운 소녀들에게 ‘너희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아픈 몸을 낫게 해줄 사람은 나뿐이다. 나를 친구로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고 세뇌시켰다. 실제로 일부 선수들은 그를 ‘누구도 낫게 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miracle worker)’으로 여기고 치료를 받으러 찾아가기도 했다.

나사르는 척추를 치료해 준다며 민감한 부위를 만지고, 심리를 치료한다며 구강성교를 강요했으며, 반항이 없으면 성폭행으로 이어갔다. 이렇게 심리를 길들인 뒤 몇 년 동안 학대를 지속했고, 20여 년 동안 대표팀을 거쳐 간 10대 소녀들에게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덴홀랜더는 “나사르는 가장 위험한 종류의 학대자다. 냉정하게 계산된 방법으로 피해자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을 꾸준히 추행할 수 있도록 고의적으로 건전하고 따뜻한 겉모습을 보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사르가 체포된 뒤 그의 집에선 3만7000개의 아동 포르노와 사진이 나왔다.

○ 수치심을 떨쳐낸 용기와 동참

나사르에게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한 아킬리나 판사는 재판 뒤 법정에서 내려가 덴홀랜더를 꼭 껴안고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격려했다. 선수 은퇴 뒤 변호사가 된 덴홀랜더가 용기를 내 나사르를 고발하지 않았다면 그의 범죄는 영영 묻혔을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덴홀랜더가 2016년 첫 폭로를 한 이후 한 명 한 명씩 동참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을 휩쓸었던 할리우드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의 영향으로 폭로자들이 늘어나면서 나사르가 결국 단죄를 받게 됐다. 나사르에 대한 피해자 증언에 80여 명이 나설 것이란 예상을 깨고 무려 156명이 증언대에 섰다. 덴홀랜더의 용기가 성폭력 후유증으로 불안과 우울, 자기학대에 시달리던 여성들을 세상 밖에 나설 수 있게 한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3개나 목에 걸었던 체조 스타 앨리 레이즈먼은 법정에 나와 나사르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 오랜 기간 비정하게 학대했던 우리는 이제 힘을 가졌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상황은 역전됐고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나사르가 부교수로 일했던 미시간주립대 루 애나 사이먼 총장이 사퇴하고, 체조협회 고위급 인물도 대거 사임했다. 앞으로 체조계에서 비슷한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미국 인디애나주 지역지인 인디스타는 지난해 12월 “미국 전역에서 지난 20년간 368명의 체조 선수가 코치 등 관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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