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시네마 천국’ 파리, 독립영화의 자존심 다시 세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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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관들, 멀티플렉스에 밀려… 관객 한 명도 없이 영화 틀기도
33개 영화관 공동마케팅 나서… 시사회 주간 만들어 ‘독립영화 축제’
“프랑스 영화 정체성 지킬 것”

프랑스 파리 5구의 독립영화관 그랑닥시옹 상영관에서 만난 이자벨 발라르디 파리 독립영화협회장은 “다양한 영화는 파리의 상징”이라며 독립영화관의 부흥 의지를 나타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파리 5구의 독립영화관 그랑닥시옹 상영관에서 만난 이자벨 발라르디 파리 독립영화협회장은 “다양한 영화는 파리의 상징”이라며 독립영화관의 부흥 의지를 나타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지난달 29일 오후 1시, 프랑스 파리 5구의 영화관 ‘스튀디오 데쥐르쉴린’에는 한 명의 관객도 없었다. 마치 오페라 공연장처럼 2층으로 꾸며진 122석의 극장 빨간 의자가 더 쓸쓸해 보였다. 영화관 운영자 플로리앙 씨는 “오늘은 영화 한 편이 상영되지만 아마 몇 명 안 올 것”이라며 “연간 3만2000명(하루 평균 87명) 정도 관객이 들어오는데 정부나 시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스튀디오 데쥐르쉴린’은 1925년 파리에 세워진 첫 ‘아방가르드(전위적) 영화관’으로 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설립 초 페르낭 레제,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많이 찾던 영화관으로 한때 ‘빅5’ 극장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어린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틀고 있다. 영화 교육을 장려하는 정부나 시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파리는 ‘영화의 도시’다. 파리의 연간 관객 수는 2500만 명으로, 시민 220만 명이 1년에 평균 11번씩 극장을 찾는 셈이다. 프랑스 평균의 4배에 이르는 횟수다. 88개 영화관, 420개의 스크린이 있는 파리는 어디에서건 걸어서 15분 안에 영화관에 갈 수 있다.

파리 영화인들의 또 다른 자부심은 다양성이다. 88개 영화관 중 33개가 독립영화관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빅3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전체 관객의 88%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독립영화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독립영화관이 똘똘 뭉쳐 대응에 나섰다. 25년 전 초중고교 학생들의 영화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파리 독립영화협회(CIP)는 2012년부터 멀티플렉스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거듭나 독립영화관 혁신에 나섰다. 멀티플렉스에 밀리지 않을 수준으로 영화관을 리모델링하고 독립영화 애호가들로 공격적인 홍보팀을 꾸렸다.

첫 결실이 지난해 시작된 시사회 주간이다. 영화인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33개 독립영화관에서 동시에 각종 시사회를 열었다. 관객들이 산책하듯 각 관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축제에 지난해 3000명, 올해 7월 2회 때는 4000명이 모였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달 23일 2년 넘게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 ‘시네카드’를 론칭했다. 영화관이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선불로 돈을 채운 시네카드는 독립영화관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현재 24개 가맹점은 곧 33개 전체로 확대될 계획이다. 5회에 30유로(약 4만1000원), 9회에 48유로(약 6만5000원)로 보통 영화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이자벨 발라르디 파리 독립영화협회장은 “독립영화관은 디지털 영화와 35mm 영화 모두 틀 수 있는 장비를 갖춰야 하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아 멀티플렉스에 비해 인건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렵다”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며 다양한 수익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정액으로 돈을 내면 무제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카드를 운영 중인 멀티플렉스와 달리 시네카드는 횟수별로 돈을 내게 했다. 이는 영화 한 편마다 정당하게 창작자들의 땀과 노력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독립영화관 그랑닥시옹에서 만난 장뤼크 오를레앙 씨는 “독립영화관을 한 달에 여러 번 찾는다”며 “매주 개봉되는 새로운 영화뿐 아니라 가끔은 옛날 영화도 보고 싶고 새로운 시각의 영화도 보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 게 파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독립영화관이 있어 특정 영화 독식 논란은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영화협회장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파리#독립영화#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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