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美 대선은 ‘덜 나쁜 악마(the lesser of two evils)’ 뽑는 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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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파문의 트럼프도 싫고, e메일 스캔들의 클린턴도 싫은데 누굴 찍어야 하나'

역대 최고 비호감 후보들 사이에서 유권자의 고민과 고통만 늘어

몰몬교의 성지인 유타 주의 제3후보 지지자 및 부동층은 무려 40%가 넘어

"'덜 나쁜 악마' 찍지 말고 투표지에 내 마음 속 후보 이름 써넣자"는 '기명투표' 움직임도


부형권 뉴욕 특파원
부형권 뉴욕 특파원
"2016년 미국 대선은 호감 가는 후보가 없는 최악의 선거다. 결국 민주-공화 2명의 후보 중 '덜 나쁜 악마'를 뽑는 선거일뿐이다."

선거 막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의 아킬레스건인 e메일 스캔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전격 결정하면서 미국 언론엔 '둘 중 덜 나쁜 악마(the lesser of two evils)'란 표현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NBC방송 등은 30일(현지 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70)는 혐오스런 음담패설 동영상 파문으로, 클린턴은 지긋지긋한 e메일 스캔들로 국민의 실망감을 더 크게 하고 있다. 두 후보의 비호감도는 60%를 육박한다. 결국 대선은 '덜 나쁜 악마'를 뽑는 선거가 돼 버렸다"고 보도했다.

'덜 나쁜 악마'는 클린턴 캠프가 가장 싫어하는 선거 프레임(구도) 중 하나다. 클린턴 후보나 지지자들은 "누가 더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준비된 자질과 자격을 갖췄는지를 봐 달라"고 외쳐왔다.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막말'로 끊임없이 논란을 빚어온 트럼프에 비해 상대적 우위가 가장 확실한 평가 척도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각종 유세나 TV토론 등에서 "트럼프 같은 기질의 인간에게 핵폭탄 버튼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FBI의 추가 수사 결정은 클린턴의 이런 트럼프 공격 포인트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망했다. 막판 대형 호재를 만난 트럼프 캠프도 "감옥에 가야 할 사람(클린턴)을 백악관으로 보내면 되겠느냐"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는 TV토론 등에서 "일반 국민이 당신(클린턴) 범죄(e메일 스캔들)의 5분의 1만 저질러도 감옥 가고 인생이 끝장난다"고 주장하곤 했다.

경제전문매체 CNN머니는 최근 "'덜 나쁜 악마' 구도는 역설적으로 트럼프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의 열성 지지자들 사이엔 '우리가 (종교 지도자) 교황을 뽑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CNN머니와 인터뷰에서 "우리도 트럼프의 음담패설 동영상이 역겹다. 그러나 그것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한편 클린턴도 싫고, 트럼프도 싫은, '덜 나쁜 악마'를 뽑는 선거에 염증과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도 여전히 많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두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를 지지하거나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의 비율이 10%가 넘는 주가 50개 중 21개에 달했다. 이중 뉴멕시코(23.0%)와 알래스카(24.2%)는 그 비율이 20%가 넘고, 몰몬교의 성지인 유타 는 무려 43.2%에 달했다. 특히 유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몰몬교 가정에서 태어난 보수성향의 무소속 후보 에번 맥멀린이 31%의 지지율을 얻어 트럼프(27%)와 클린턴(24%)을 모두 제치며 1위에 오르는 이변을 낳고 있다. CNN머니는 "종교적 도덕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짙은 유타 주 유권자들이 '덜 나쁜 악마'를 뽑는 선거 구도를 특히 더 혐오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선거 막판에 이르렀는데도 투표용지에 공식적으로 인쇄돼 있지 않은 지지 후보의 이름을 직접 써넣는 '기명투표(write-in)'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구글 검색어를 수집해 분석하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기명투표 관련 검색은 트럼프와 클린턴이 접전을 벌이는 이른바 '경합주(스윙 스테이트)'가 아니라 역대 민주당 지지 성향이 뚜렷했던 버몬트 델라웨어 뉴저지 등이나 전통적 공화당 텃밭인 유타 인디애나 등에서 더 급증했다. 민주당 지역에서 투표지에 이름을 써넣고 싶은 '기명투표' 후보로 클린턴의 경선 맞상대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가, 공화당 지역에선 트럼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니애나 주지사가 연관 검색어 등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고 CNN머니는 보도했다. 민주-공화 양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조차도 자기 당 후보인 클린턴과 트럼프에 대해 적잖은 회의감과 불만이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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