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美 제국주의의 선물은 필요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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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선물이 필요 없다.”

쿠바 혁명의 살아있는 전설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90·사진)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55)의 쿠바 방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떠난 지 6일 만인 28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오바마 형제에게(Brother Obama)’란 제목의 편지 형식의 기고 글을 실었다. 자신이 이끈 쿠바 혁명이 경제난 속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반박하면서 향후 미국의 내정 간섭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았다.

피델 전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22일 쿠바 아바나의 국립극장 연설에서 ‘수십 년의 갈등을 빚은 과거는 뒤에 내버려 두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한 발언에 대해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들은 쿠바인들은 심장마비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비꼬았다. 1961년 피그스 만 침공, 1976년 쿠바 항공기 폭파 사건을 열거하며 “미국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들로 수백 명의 쿠바인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누구도 이 고귀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쿠바인)이 교육, 과학, 문화의 발전을 통해 얻은 영광과 권리, 정신적인 자산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 없다”며 “미국은 쿠바의 정치 체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쿠바 공산주의의 주창자였던 피델 전 의장은 “우리는 우리 국민의 노동과 지식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과 재료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델 전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기간 중 반(反)정부 활동가들을 만나고 민주주의 확산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시했다. 피델 전 의장은 “그가 쿠바 정치에 대해 반응을 보이고 쿠바에 대한 어떤(정치적) 이론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델 전 의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란마에 ‘피델의 반응’이란 제목으로 정기적으로 글을 실었지만 오바마 대통령 방문을 앞둔 올 초부터는 침묵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부터 사흘 동안 쿠바를 방문해 양국 관계 정상화에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5)을 만났지만 쿠바 혁명의 상징인 라울의 형 피델 전 의장과의 역사적인 만남은 갖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지에서 가진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고령인 그의 건강이 허락된다면 만남이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피델 전 의장을 만난 뒤 돌아간 것을 감안하면 피델이 건강 이상으로 만나지 못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위싱턴포스트(WP)가 22일 전했다. 피델 전 의장은 지난해 5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같은 해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도 했다.

피델 전 의장은 2006년 장출혈로 건강이 악화된 뒤 2008년 동생 라울에게 의장직을 물려줬다. 하지만 쿠바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뉴욕타임스는 테드 피코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인용해 “오바마가 떠난 뒤에야 글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은 피델이 동생 라울의 대미관계 개선 정책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피델 전 의장의 글이 미국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내부 단결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피델 카스트로#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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