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아웃사이더 돌풍… 美대선정국 ‘분노의 지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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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치판 흔드는 앵그리 아메리칸
대선 바로미터 아이오와주 조사서 의사출신 카슨, 트럼프와 동률1위
“워싱턴 밖 인물 집권 지지” 66%
공화 91%-민주 82% “현 정치권 불만”… “미치도록 화가 난다”도 20% 넘어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버니 샌더스(민주당)에 이어 또 다른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신경외과 의사 출신 벤 카슨 후보(공화당·사진)가 미국 대선 정국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 현지 언론은 기성 워싱턴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역대 어느 미 대선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분출된 결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앵그리 아메리칸(Angry American)’이 미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

○ 트럼프에 이은 또 다른 아웃사이더 카슨


미 몬머스대가 지난달 27∼30일 아이오와 주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 405명을 상대로 실시해 지난달 3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슨은 23%의 지지를 얻어 트럼프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아이오와 주는 내년 2월 1일 미국에서 대선 주자 선출을 위한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대선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곳이다. 또 다른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CEO)도 10%를 얻어 트럼프와 카슨의 뒤를 이었다. 반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5%,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9%를 얻는 등 기성 정치인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 공화당원들의 불안감 증폭


미 언론은 이 같은 이변이 달라진 정치 지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아웃사이더들의 약진은 미 유권자 구성이 점점 더 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변하는 데 대한 공화당원들의 불안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등 동·서부 해안 대도시는 민주당, 중남부 소도시는 공화당이 우세였다. 그런데 금융위기 등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줄자 대도시에 살던 민주당 지지층이 물가가 싼 공화당 주(州)로 이동하면서 전통적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공화당 지지주)가 줄어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인구통계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민주당 텃밭인 뉴욕 주에서 태어나 살던 미국인 2000만 명 중 무려 16.7%가 남부로 이동했다. 50년 전만 해도 4%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던 노스캐롤라이나 주만 해도 현재 전체 인구의 41%가 민주당 지지주(blue state)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39%), 유타(34%), 조지아(30%) 등도 마찬가지다. 수도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 주는 원래 보수 성향이 강했지만 워싱턴에 일자리를 보고 몰려든 민주당 성향의 북동부 출신 젊은이들로 인해 민주당 지지 주로 바뀌었다.

블룸버그는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이른바 ‘리포미콘(reformicon)’ 움직임을 주목했다. 리포미콘은 ‘개혁(reform)’과 ‘보수주의(conservatism)’의 합성어로 이민법, 최저임금 인상, 동성결혼, 남부기 퇴출 등 핵심 현안에서 공화당이 진보 색채를 가미하는 현상을 말한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인종주의의 상징인 남부기를 퇴출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공화당 대선주자 중 강경파로 꼽히는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연설 주제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다.

○ 확산되는 기성 정치 혐오

미 대선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지만 요즘 미국 언론은 “누가 됐든 ‘워싱턴 아웃사이더’가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앞서 언급한 몬머스대 조사에서 ‘워싱턴 밖 인물이 집권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로, ‘기성 정치인이 집권해야 한다’(23%)는 응답보다 3배가량 많았다.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 시의 현지 매체인 ‘디모인 레지스터’가 블룸버그와 공동으로 실시해 지난달 30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서도 공화당 지지자의 91%, 민주당 지지자의 82%가 현 정치권에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29%, 민주당 지지자의 22%는 현 정치권에 ‘미치도록 화가 난다(Mad as Hell)’고 답해 여야를 불문하고 미 대중의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디모인 레지스터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와의 지지율 격차가 5월 57% 대 16%에서 37% 대 30%로까지 좁혀졌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또 선거자금 모금에 핵심적 역할을 해온 이마드 주베리(45)가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도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최근 포린폴리시 보도로 궁지에 몰렸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하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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