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고받았다는 부시, 자서전엔 “2002년 물고문 승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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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고문 실태 보고서’ 공개]
‘대통령 보고 시점’ 서로 달라… CIA요원들, 부시 감싸기 의혹
오바마 “고문, 美가치와 괴리” 비판… 부시 “CIA 직원들은 애국자” 옹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의 고문 및 구금 실태를 언제,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9일 공개한 상원 보고서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쓴 자서전의 내용이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상원 보고서는 부시 전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 2006년까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CIA의 브리핑을 받은 것은 2006년 4월로 그 전해 11월 워싱턴포스트(WP)가 관련 폭로를 한 뒤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2010년 펴낸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에서 “2002년 체포된 알카에다 핵심 요원 아부 주바이다가 CIA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멈췄지만 9·11테러 사건과 유사한 공격 계획과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CIA가 법무부로부터 승인받은 고문 기술 목록을 봤고 이 중 두 가지는 ‘너무 나갔다’고 느껴서 CIA에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물고문 등 다른 기술은 사용을 승인했다”고 썼다.

자서전에는 2003년 당시 조지 테닛 CIA 국장이 9·11테러의 주모자 중 한 명인 알카에다 작전 참모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를 체포한 뒤 ‘혹독한 고문 방식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승인을 요구하자 “당연하지(damn right)”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에 대해 WP는 9일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인터뷰에 응한 전현직 CIA 요원들이 부시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한 듯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보고서 공개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및 민주당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보고서 공개 뒤 텔레문도와의 인터뷰에서 “CIA의 일부 행동은 미국의 가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이익에도 부합하지 못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공화당 중진이자 베트남전쟁 때 5년간 전쟁 포로 생활을 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진실의 약은 삼키기 힘든 법”이라면서 “CIA의 고문이 국가의 명예에 오점을 남겼다. 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으면서 해만 많이 끼쳤다”며 이례적으로 보고서 공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 당시 각료들, 전직 CIA 수장들은 “고문은 테러범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7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CIA 직원들은 애국자들”이라며 CIA를 옹호했고 딕 체니 전 부통령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완전히,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CIA는 상원 정보위 보고서에 맞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내용을 담은 별도의 보고서 공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IA 고문 보고서를 둘러싼 양측 간 갈등이 심화되면 이민개혁 행정명령,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등 안 그래도 충돌 지점이 많은 미 정치권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 정국으로 빨려들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부시#자서전#물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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