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보수 양대 아이콘, 동시에 성인 반열 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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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상 첫 전임교황 2명 합동 시성식… 염추기경 등 100만 순례자 참석

가톨릭 사상 최초로 교황 두 명이 동시에 성인(聖人) 반열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7일 오전 10시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약 100만 명의 군중 앞에서 261대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년)와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시성(諡聖)은 가톨릭에서 순교자나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을 행한 모범적인 신앙인을 교황이 성인으로 선포하는 행위다.

시성식 전부터 이탈리아 로마는 축제 분위기였다. 세계 각국 대표단과 가톨릭 신자들이 시성식 참관을 위해 로마로 몰렸다. 한국에서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참석했다. 26일에는 밤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시내 모든 성당이 문을 열었다. 곳곳에는 두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각종 기념품과 전시물이 넘쳐났다.

소작농의 아들로 ‘착한 교황 요한’이라는 별명을 지닌 요한 23세(본명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이탈리아)는 1962년 가톨릭 개혁 및 현대화에 큰 기여를 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라틴어로만 봉헌되던 미사가 각 나라 언어로 바뀐 것도 이 공의회의 결정이었다. 같은 해 미 시사주간 타임이 그를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올해의 인물’로 뽑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종 요한 23세의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가난한 가정 출신이고 교황이 되기 전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깜짝 선출됐으며 탈권위적 성향을 지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본명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폴란드)는 동성애 낙태 안락사 해방신학 등에 반대한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27년의 재위 기간에 120여 개국을 방문하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타국에 도착하는 순간 땅에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모국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두 교황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요한 23세는 1948년 한국 정부가 유엔의 승인을 받을 때 큰 도움을 줬다. 당시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였던 그는 한국 대표단이 외국 대표단과 만나 교섭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역대 교황 중 유일하게 두 차례 내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첫 방한인 198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바티칸 외부에서 실시된 최초의 시성식을 주례했다. 당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언급해 주위를 놀라게 했고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들을 위로했다.

개혁파를 대변하는 요한 23세와 보수파를 대표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합동 시성은 가톨릭 종파 화합을 위해 현 교황이 택한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분석이 많다. 에이먼 더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요한 23세는 보수파로부터 2개 이상의 기적 시행이라는 성인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요한 바오로 2세는 개혁파로부터 가톨릭 성추문 은폐 논란을 지적받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합동 시성식으로 양쪽 모두의 비판을 피해 갔다”고 평가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가톨릭#교황#시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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