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여 美전사자가 뿌린 ‘혈맹 씨앗’… 年182만명 교류 결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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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60주년]숫자로 보는 과거와 현재

《 혈맹(血盟). 국가관계 중 동맹 이상은 없다. 한미관계는 흔히 ‘피로 맺은 동맹’으로 불린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수많은 미국 젊은이가 이름조차도 생소한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에서 피를 흘렸다. 3년간의 전쟁 동안 3만3686명이 전사했고 3254명이 기타 이유로 사망했다. 그들의 피는 한국의 기적 같은 성장에 밑거름 역할을 했다. 》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출범한 수많은 신생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과 미국의 첫 만남은 구한말 1882년(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양국 간 ‘관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10월 1일부터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명실상부한 동맹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날이다.

1950년대 신생국가인 한국은 미국의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액이 27억2790만 달러였다. 미국의 요청을 받아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다. 6·25전쟁에서의 미국 젊은이들처럼. 대규모 파병이 진행된 1965∼1972년 연평균 3만7200여 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장으로 떠났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2012년 말까지 모두 2953건의 대남 침투와 국지도발을 자행했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이런 대남침략에 맞서며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면전이 발생하는 것을 억지하는 역할을 했다. 주한미군을 대체하려면 최대 300억 달러(약 32조2100억 원)의 예산을 국방비에 추가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만큼 안보비용을 한미동맹이 절감시켜 주는 셈이다.

한미 양국은 군사동맹으로 시작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업그레이드돼 왔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을 오간 인원만 182만 명이 넘을 정도로 상호 교류가 활발하다. 2007년 체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을 공고히 하는 시금석이 됐다. 2012년 3월 15일 정식 발효된 이후 한국의 대미 무역액은 크게 증가했다. 같은 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액은 152억 달러로 전년 대비 31%가량 증가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미동맹이 그동안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주한미군의 범죄에 한국민의 공분이 일었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8년 한 여론조사에선 ‘한국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북한(24.5%)보다 미국(28.4%)을 좀더 많이 꼽았다.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번뇌(煩惱)’는 한국의 큰 숙제 같다. 지금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 문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 양국 간 뜨거운 이슈가 계속된다.

한미동맹은 ‘함께할 미래’를 공유하며 과거와 현재의 응어리를 해소해왔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이고 포괄적인 동맹관계. 6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이 함께 추구해야 할 청사진이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한미동맹#60주년#혈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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