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해결사’로 뜬 온라인 청원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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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쇠고기 급식 금지에서 스노든 석방 요구까지

지난해 3월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학부모 베티나 시겔 씨는 유명 청원(請願) 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 청원 하나를 올렸다. 아이들이 먹는 학교 급식에서 핑크 슬라임(pink slime) 쇠고기를 퇴출시키라는 것이었다. 핑크 슬라임이란 부위별로 살을 발라내고 남은 쇠고기를 다시 모아 사용하기 위해 분홍색 점액 성분의 암모니아 화합물을 이용하여 재처리한 것. 암모니아 처리된 쇠고기는 주로 햄버거 패티 등에 사용됐지만 인체에 대한 유해성이 제기돼 맥도널드 등 미 주요 패스트푸드점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들에서는 판매가 중단됐다. 하지만 학교 급식에는 계속 사용돼 뉴욕타임스(NYT) 같은 주요 언론과 건강 전문가들이 안전성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이 난제를 시겔 씨는 온라인 청원을 통해 한 번에 해결했다. 그의 청원에 일주일 만에 25만 명의 누리꾼이 서명했고 결국 미 농무부(USDA)는 지난해 가을부터 학교 급식에 핑크 슬라임이 공급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이는 온라인 청원의 성공 사례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자신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자 및 기업에 직접 전달되기를 원하는 시민이 많아지면서 온라인 청원 사이트가 붐을 맞고 있다.

대표적 온라인 청원 사이트로는 시겔 씨가 이용한 체인지가 있다. 2007년에 처음 문을 연 이 사이트는 현재 회원 3500만 명을 가진 미국을 대표하는 청원 사이트가 됐다. 국제사면위원회 등 비영리 단체에서 광고비를 받고 운영되는 영리 기업이지만 온라인 청원 성과는 다른 사이트에 비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사이트의 또 다른 성공 사례로는 유방암 4기 판정을 받고 유방절제술을 받은 스코치 배링턴 씨. 그는 페이스북 측이 유방절제술을 받아 흉터가 있는 여성의 상체 사진 게재를 검열하는 것에 대해 청원 운동을 벌였다. 배링턴 씨는 유방절제술을 받은 흉터 사진은 누드가 아니라 암을 이겨낸 희망의 상징이라며 페이스북의 검열 정책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2만 명의 누리꾼이 서명했고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11일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검열 정책을 취소하고 유방암 환자들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백악관이 직접 운영하는 청원 사이트 위더피플(we the people)은 체인지에 비해 늦게 열었지만 정책 결정권자에게 ‘신문고’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현재 총 회원 541만여 명에 총 청원 건수는 14만여 건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종 사안에 대해 서명한 사람만 해도 918만여 명에 이르고 시간당 약 807명이 각종 청원에 서명을 하고 있다. 청원을 올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고 직접 답을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에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 및 전 세계인이 이곳에 청원을 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반대 운동 청원에서부터 평화로운 터키 시위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다양한 주제가 매일 올라온다. 이에 백악관은 이런 무의미한 장난성 청원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당초 2만5000명이던 답변 서명 기준수를 올해 1월부터는 30일 내에 10만 명 이상으로 대폭 올렸다. 현재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서는 미 정보기관의 민간인 정보 수집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석방하라’란 청원이 9일부터 현재까지 7만8774명의 서명을 받아 조만간 이에 대해 백악관이 공식적인 대답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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