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콜로라도 주 극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미국에서 또다시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한 시크교 사원에서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7명이 숨지고 20∼30명이 부상했다.
일요일인 5일 오전 10시 30분 밀워키 교외에 있는 오크크리크의 시크교 사원에 예배를 보려는 신도들이 모였다. 주로 여성과 아이들로 30명가량이었다. 이때 총을 든 백인 남성 한 명이 들어와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예배당은 피범벅이 됐고, 비명으로 가득했다. 일부 신도는 화장실과 기도실에 몸을 숨겼다.
총기 난동은 경찰이 도착해 교전 끝에 범인을 사살한 뒤에야 끝이 났다. 희생자 6명의 시신 중 4구는 사원 안에서 발견됐고 2구는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만약 범인이 1시간 더 늦게 사원에 도착해 총격을 가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오후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가 300명가량으로 훨씬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날 오후 “범인은 군인 출신인 웨이드 마이클 페이지(40·사진)”라고 발표했다. 1992∼98년 낙하산부대 요원으로 복무했던 페이지는 ‘심리전 스페셜리스트’라는 특수병과 경력을 지녔다. AFP통신에 따르면 그의 거주지는 사건 현장에서 4km 정도 떨어진 밀워키 교외 쿠데헤이 시로, 현재 경찰이 집 안팎을 수색하고 있다.
이번 총격 사건은 인구 약 3만5000명의 작은 도시 오크크리크에서부터 수도인 워싱턴, 나아가 시크교의 본산인 인도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정 종교를 겨냥한 테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목격자는 페이지 몸에 9·11 테러와 ‘네오 나치’를 의미하는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 연예전문 인터넷매체인 ‘글로벌 그라인드’는 페이지의 사진을 공개하고 “친(親) 네오 나치 음악밴드인 ‘엔드 애퍼시’의 멤버이며 2000년부터 백인우월주의자 단체회원으로 활동했다”고 전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시크교도들을 무슬림으로 오인하고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시크교 교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인근의 다른 시크교 사원에 다니는 만지트 싱 씨는 “사람들이 우리를 무슬림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시크교 신자들이 공격받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시크교도 2명이 테러로 숨졌으며 미시간 주의 한 시크교 사원 기물이 손상되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시크교도 1명이 구타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총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돼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위로의 뜻을 나타냈다. 시크교 신자인 만모한 싱 인도 총리도 성명에서 “무분별한 폭력이 종교의식을 치르는 장소를 겨냥해 일어났다는 점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남아시아에서 15세기에 태동한 유일신 종교인 시크교의 신자들은 머리를 깎지 않는다. 시크교 남성은 머리에 화려한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길러 종종 무슬림으로 오해받곤 한다. 시크교 신자는 전 세계에 약 2700만 명, 미국에는 31만4000여 명이 있다. 1997년 설립된 오크크리크 사원의 신자는 4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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