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을 세뇌하려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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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체제 찬양 과목 도입 반발 학생 교사 학부모 수만명 시위

홍콩 주민 수만 명이 29일 올해 가을학기부터 초등학교 등 각급 학교 교과과정에 새로 도입되는 ‘중국식 국민교육’이 ‘홍색(紅色) 세뇌’라며 반대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 시위대는 이날 오후 홍콩 섬 빅토리아공원에서 정부청사까지 4km가량을 행진했다. 참석자 중에는 어린아이를 끌고 온 ‘유모차 부대’도 있었다. 시위대 측은 9만여 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한 반면 경찰은 3만2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이번 시위는 홍콩 당국이 9월부터 초등학교에 국민교육 과목을 도입한 뒤 내년에는 이를 중고교에 확대 적용하고, 2015년부터는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주민들은 국민교육 과정이 중국 체제를 선전하는 ‘홍색 세뇌’라고 주장한다.

각급 학교에 배포된 ‘중국모식(中國模式·중국 모델)’이라는 제목의 국민교육 교과서는 34쪽 중 22쪽을 중국 정치제체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역경을 딛고 성공한 역사와 개인의 감정을 자제하는 방식, 다른 민족과 화합하는 법 등이 포함됐다.

홍콩 당국은 1년에 50시간인 국민교육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소속감을 느낄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자주적 사고력도 길러준다고 주장했다.

두 살배기 아이와 함께 시위에 참가한 샌드라 웡 씨는 “국민교육 과목은 오직 중국 공산당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린 것일 뿐”이라며 “부모로서 정말 화가 난다. 너무 뻔뻔한 세뇌작업이다”라고 비판했다. 고등학생인 셜리 청은 “교과서에 톈안먼(天安門) 사태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 수업이 자주적 사고를 일깨워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교사연합은 30일 “시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각급 교육 단체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의견이 모아지면 국민교육 도입 반대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8일 당국과 교육 관련 단체들은 국민교육 수업 연기 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홍콩 시민#홍색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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