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 방불 ‘천광청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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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간 병든 척… 온정적 공안에 “통화 한번만 눈감아달라”
부인이 감시원에 말 걸때 담 넘어… 협력 반체제인사 체포

“천광청의 탈출은 몇 달 동안 공들인 기적의 산물이었다.”(중국 인권운동가 쩡진옌 씨)

22일 중국 정부와 공안의 감시망을 뚫고 성공한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 씨의 탈출은 한편의 첩보영화와 같았다. 목숨을 건 반체제 비밀네트워크와 신원 미상의 공안 측 조력자, 천 씨 부인의 희생이 없었다면 시도 자체도 불가능했다.

2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산둥(山東) 성 둥스구(東師古) 촌에 있는 천 씨의 자택은 미국 샌프란스시코 앞바다에 있는 앨커트래즈 형무소를 방불케 했다. 지방정부가 집 주위에 높다랗게 시멘트벽을 쌓아올렸고, 여러 대의 감시 폐쇄회로(CC)TV와 전파차단장비가 설치됐다. 집 바깥을 지키는 인원만 70명이 넘었다. 천 씨는 지인들에게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도 최소 3명이 따라붙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천 씨의 탈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집안에 몰래 땅굴을 파다 들키기도 했고, 감시가 느슨한 틈에 슬쩍 나가려다 구타를 당한 적도 있다. 결국 단독 탈출은 어렵다고 판단한 천 씨는 어렵사리 비밀네트워크에 도움을 청했다. 그의 탈출을 도운 후자 씨는 “정확한 방법은 공개할 수 없지만 손으로 만든 암호를 교환하며 계획을 짰다”고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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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뉴스는 “천 씨는 탈출 결심이 선 뒤 몇 달 동안 병에 걸린 듯 행동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고, 걷기조차 힘든 척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동정적이던 한 공안을 천천히 설득했다. 필요한 순간 딱 한 번만 전화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동안 비밀네트워크는 최소 인원 5명만 투입하는 탈출 시나리오를 짰다. 인권운동가 쩡 씨와 후자 씨가 총괄 진행과 연락을 담당하고, 허페이룽 씨가 차량 이동을 맡았다. 천 씨의 베이징 은신처 확보는 반체제 학자 거우위산 씨와 또 다른 인권운동가 1명이 전담했다.

디데이 전날인 21일. 천 씨는 공안에게 부탁해 전파방해장치를 잠시 동안 껐다. 그 사이 휴대전화로 외부와 통화해 정확한 탈출시간과 방법을 조율했다. 다음 날 밤, 천 씨는 집 뒤편 사각지대의 벽을 천천히 기어올랐다. 당시 천 씨 부인은 일부러 대문 앞을 서성이고, 공안들에게 말을 걸며 주위를 분산시켰다. 담을 넘은 천 씨는 미리 약속된 장소로 가서 숨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이미 머릿속에 지리를 담아뒀기 때문에 밤 이동이 오히려 수월했다. 약속장소에서 천 씨를 차에 태운 허 씨는 곧장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후 천 씨는 거우 씨 등과 합류한 뒤 매일 거처를 옮기며 공안의 추격을 뿌리쳤다. 후자 씨는 “천 씨가 20여 시간에 걸치는 탈출 과정 중에 적어도 200번은 넘어졌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가 보도했다.

탈출은 성공했지만 대가는 너무나 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후자 씨와 허 씨, 거우 씨는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고, 개인 블로그도 폐쇄됐다. 후 씨는 베이징의 한 카페에서 28일 dpa 소속 기자를 만난 후 4시간이 지나 “경찰들이 신문을 위해 나를 데려가려고 불러냈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그의 아내도 28일 트위터를 통해 “경찰들이 전화로 신문이 24시간 연장됐다고 알려줬다”며 “내가 남편은 어디서 자고 있느냐고 묻자 경찰은 의자에서 자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허 씨도 이날 지인과의 통화에서 “난징에서 공안인 듯한 이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이미 체포됐을 가능성이 높다. 쩡 씨와 나머지 1명은 급히 피신했으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천 씨의 형제 1명도 공안이 임의동행을 요구해 끌려갔으며,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공안 내부 조력자도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 씨의 아내와 자녀들은 외부세계의 이목 때문인지 29일 현재까지는 끌려가지 않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천광청#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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