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10년 가를 샅바싸움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中 차기 지도자 시진핑 국가부주석 오늘 美 방문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수교 직후인 1979년 1월 말 미국 텍사스 주를 방문했을 때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마차를 탄 채 군중에게 인사했다. ‘죽의 장막’에서 온 ‘작은 거인’에게서 기대하기 힘들었던 개방적 몸짓이었다. 덩은 휴스턴의 존슨우주센터에서 모의 우주 왕복선에 타보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책 방향과 철학 등을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중국 지도자들의 의중은 말 한마디와 절제된 행동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에게 쏠린 세계의 눈길도 이와 비슷하다.

올가을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고 내년 국가주석에 선출될 예정인 시 부주석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을 앞으로 10년가량 이끌 ‘미래 권력’이다.

그는 이번 방미를 통해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국제 외교무대에 본격 데뷔한다. 또한 그의 방미는 앞으로 미중이 벌일 외교전의 향방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간 세계의 판도를 좌우할 주요 2개국(G2)의 샅바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백악관이 10일 공개한 시 부주석의 방미 일정은 미국이 그를 얼마나 극진하게 예우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직 2인자이지만 차기 최고지도자라는 점을 의식한 흔적이 일정 곳곳에 담겨 있다.

앤서니 블링컨 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백악관 출입기자들과의 콘퍼런스콜을 통해 시 부주석은 14일 오전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백악관에서 공식 회담을 하며 이에 앞서 주요 부처 장관들과 만난다고 밝혔다. 시 부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의 회담은 2시간 이상 진행될 것이라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백악관은 회담에서 무역 이슈와 국가안보, 군사, 지역 및 세계적인 도전에 관한 과제 등이 총체적으로 협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미는 지난해 8월 바이든 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이어 시 부주석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다. 점심은 바이든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시 부주석과 중국 대표단을 초청해 국무부에서 공동으로 베푼다. 오찬에는 재계와 비정부기구(NGO), 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도 참석한다.

오후에는 펜타곤에서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을 만나 양국의 군사관계를 논의한다. ‘중국 2인자’를 펜타곤으로 초청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어 시 부주석은 미 상공회의소에서 양국 재계 지도자를 만나 양국 간의 무역 이슈를 놓고 심층 토론을 벌인다. 여기서 위안화 절상 문제를 비롯한 통상 마찰 이슈가 집중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 오바마 집무실서 회담… 商議서 토론회도 ▼

15일에는 의회를 찾아 상하원 의회 지도자를 만난 후 오후에 아이오와 주로 날아간다. 27년 전인 1985년 허베이(河北) 성 정딩(正定) 현 당서기로 축산대표단을 이끌고 양돈 기술을 배우기 위해 머스카틴을 방문한 적이 있는 시 부주석은 이번에는 톰 빌색 미 농림장관과 게리 로크 주중 미 대사의 안내로 이곳을 찾는다. 또 미국 측은 시 부주석의 아버지가 1980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들을 모아 만든 사진첩을 선물로 준비했다.

미국은 정상에 버금가는 예우를 갖춰 시 부주석을 환대하면서도 두 나라 간 첨예한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아시아 중시 전략’을 대내외에 재천명하는 등 미중 관계에 대한 확고한 방침을 보여줄 계획이다. ‘할 말은 하겠다’는 것이다.

대니얼 러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우리는 중국의 부상을 환영한다”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만큼 중국은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법률과 규정을 준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미중 간의 무역 불균형 해소와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뿐 아니라 인권 문제와 티베트 사태 등 현안에 대해서도 시 부주석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대중 강경자세를 통해 국내의 정치적 지지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실해 대중 외교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시 부주석이 미국과 어떤 외교 관계를 설정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 부주석으로서도 ‘강온(强穩)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강경한 면은 그가 2009년 멕시코 등 중남미를 방문했을 때 보여줬다. 그는 당시 “게으른 일부 외국인이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우리는 혁명도 기아도 가난도 수출하지 않았고 어떤 두통거리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라고 공세를 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서방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중국에 손을 벌리면서도 인권 등을 놓고 중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받아친 것이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시 부주석의 방미에 앞서 9일 “미중 간 ‘신뢰 적자(赤字)’는 미중 양국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리아 제재에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미국이 비판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청리는 “시 부주석이 미중 화해를 의식해 서방에 유약하고 순치된 모습을 보이면 중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시 부주석은 과거 27년 전 인연을 찾아 아이오와 주를 방문하거나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관람하는 등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신뢰 적자 ::

현재 미-중 간 신뢰가 양국 관계 발전에 필요한 수준보다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추이톈카이 부부장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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