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反집시 폭동… 훌리건까지 가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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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집시족 지도자 車에 마을청년이 치여 숨진게 발단
주민 수백명 몰려가 방화난동, 1명 추가 사망… 127명 체포

25일 불가리아 남부 지방에서 ‘반(反)집시’ 인종폭동이 일어나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경제난 속에서 유럽사회에서 이민자와 집시 등 소수계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발생한 폭력행위여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폭동은 23일 밤, 플로브디브 시 남부 카투니차 마을에서 불법 체류 집시족인 ‘로마’(Roma·유엔 등 국제사회가 ‘집시’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공식 용어)의 마을 지도자 격인 키릴 라스코프 씨(69)가 몰던 미니버스에 마을의 19세 청년이 치여 숨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성난 마을 주민 500명가량이 라스코프 씨의 집으로 몰려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집시족 추방을 요구했다. 인근 지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훌리건도 폭동에 가담했다. 이 와중에 폭동에 참가했던 16세 소년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고 진압하던 경찰관 3명을 포함한 남성 5명이 다쳤다. 경찰은 차량을 부수고 라스코프 씨와 관련된 가옥 세 채를 불 지른 혐의로 127명을 체포했다고 불가리아통신(BTA) 등이 26일 전했다.

로마는 불가리아에만 60만∼80만 명이 살고 있다. 소피아통신에 따르면 플로브디브 시는 인구 35만 명 가운데 약 4만 명이 로마족인 불가리아 최대 로마 밀집 지역이다. 라스코프 씨는 ‘집시 차르’, ‘차르 키로’로 불리며 카투니차 마을 로마들(2300명 추산)의 실세로 군림해 왔다. 그는 1998년 ‘로마의 정치·경제 생활 개선’을 촉구하며 정당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번 폭동과 관련해 보이코 보리소프 불가리아 총리는 b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건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존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빠른 해결을 촉구했다. 경찰과 헌병대가 투입되면서 마을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로마들에 대한 혐오감과 불만은 남아 있다.

14세기부터 방랑생활을 해왔던 로마들은 유럽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곳에 정주하지 않는 까닭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하층민에 속하며 여러 가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2003년 6월 유럽회의의 부속기구인 유럽인종차별위원회(ECRI)는 보고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로마의 거주 구역들이 게토나 슬럼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국이 신경을 쓰지 않는 동안 이들은 건강, 위생, 교통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비단 불가리아뿐이 아닌 유럽 전 지역에 해당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유럽의 극우파들은 이들을 두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존재라며 추방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부터 로마 거주 구역을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해 성인 300유로, 어린이 100유로의 생계 자원금을 주고 이들을 강제 추방시킨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로마들이 고향인 루마니아 등지로 갔다가 다시 ‘U턴’하는 현상이 빚어지면서 비슷한 수로 유지되고 있다”며 강제 추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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