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중국 원저우 고속철 참사’ 당시 발생한 희생자 유가족들의 집단시위에는 사회주의 체제의 종교 통제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9일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을 재조명하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사고로 아내와 네 살짜리 아들을 잃은 저우더푸(周德服) 씨는 인터뷰에서 “당국은 유가족들에게 시신을 화장하도록 했지만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기독교인이다. 시신을 지역 교회로 옮겨 와 합당한 제의에 따라 장례를 치르길 원했다”고 전했다. 시 정부 청사 앞에서 100여 명의 유족과 함께 시위를 이끌었던 양펑(楊鋒) 씨 역시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정부의 무관심에 항거하며 기독교식 장례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국 당국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화장터에서 종교 행사를 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 신문은 이런 결과가 유가족들의 강한 종교적 신념에 기인했다며 이례적인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유독 원저우에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는 무엇보다 이 지역이 ‘중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큼 기독교적 색채가 짙기 때문.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전체 인구 955만 명 중 공식 등록한 기독교도가 70만 명에 이른다. 미등록 교회인 ‘지하교회’까지 감안하면 거주민의 30%가 개신교 신자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저우 사례가 해당 지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지하교회가 20여 개 도시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으며 신도 수는 최대 6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는 있지만 기독교와 가톨릭 신도들은 반드시 정부 소속 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드려야 한다. 이 때문에 정식 인가 구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도는 2000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그 3배에 이르는 신자들이 비밀리에 종교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도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베이징에서 옥외집회를 하려던 지하교회 신도 수십 명을 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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